'고귀함' 뜻 이름 '카림', 선일에게 붙여줬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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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선일씨에게는 '카림'이라는 아랍식 이름이 있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아랍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라크인 모하메드 알리 모나 켈리(49.여)가 생전의 김씨에게 직접 붙여준 이름이다. 아랍어로 '카림'은 '고귀함'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렇게 성실하고 착한 '카림'이 내가 태어난 땅에서 죽다니…." 23일 김씨 피살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져 외부와의 접촉을 끊어온 모나는 25일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김씨와의 인연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모나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3월 초. 아랍어 회화 첫 수업 때였다.

학생들의 이름을 다 부르고 나니 출석부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마른 체격의 한 남학생이 강의실 뒤편에 수줍게 앉아 있었다.

"선생님께 아랍어를 배우고 싶어서 들어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한국어가 서툰 모나는 김씨와 영어로 나눴던 첫 대화와 그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랍어를 배우면서 자신이 신학교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도이며 장차 목사가 되고 싶다는 김씨의 사연도 독특했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어요. 시험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도 빠지지 않았으니까요."

모나는 편입생으로 뒤늦게 아랍어 공부에 뛰어든 김씨를 위해 수업이 끝나면 10여분 정도 별도로 1 대 1 보충 강의를 해주기도 했다. 일일이 발음을 교정해 주면 수줍게 웃던 김씨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는 모나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라크 바그다드가 고향인 모나는 건설사 직원으로 중동에 파견됐던 박효준(51)씨를 만나 1983년 결혼했다. 한국과 이라크를 오가며 생활했던 부부는 97년 한국에 정착했고, 모나는 이듬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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