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환경대탐사]3.문경세재∼태백산 구간(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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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산은 영원한 생명력을 갖고 살아 숨쉬는 국토의 허파. 국토의 근간을 이루는 백두대간을 따라 펼쳐진 삼림은 자연환경의 보고 (寶庫) 이자 우리 민족의 자화상. 그러나 지역개발의 이름으로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상의 주요 능선자락이 싹뚝 잘려나가 허연 맨살을 드러낸 채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 내고 있다.

백두대간 능선 곳곳을 훼손해 뚫어 놓은 포장도로가 동.식물의 이동로를 차단하며 자연생태계 벨트의 기능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소백산과 태백산 자락이 맞닿은 경북봉화군춘양면 도래기재. 소백산 능선 끝자락에서 등산로를 따라 태백산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타나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발끝 50m아래로 거의 수직에 가깝게 양쪽 능선이 절단돼 있었다.

밑을 내려다보니 2차선 포장도로를 숨가쁘게 오르는 자동차들이 시꺼먼 매연을 내뿜고 있다.

양쪽 능선은 1백m가까이 끊어져 소백산의 금강소나무.신갈나무, 태백산의 주목나무등 희귀 식목의 전이 (轉移) 통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도로 한가운데는 자동차에 치인 동물이 납작하게 뭉개져 있었다.

강원도태백시 혈동에서 31번국도를 따라 화방재까지 자동차로 20여분간 달리면 만나는 2차선 4백14번 국도. 함백산 (해발 1천5백73m) 의 경사면을 지그재그로 깎아 해발 1천1백m의 만항재까지 연결한 이 도로는 함백산 전체를 '생태파괴 띠' 로 둘둘 말아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정부가 지정한 자연생태계보호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태백시와 정선군을 잇는 싸리재고개를 관통한 38번 포장도로는 함백산의 주목과 생태보호지역인 금대봉 (태백시와 정선군고한읍 경계) 의 솔나리등 고산식물의 군락지를 고립 시켰다.

금대봉계곡에 한강의 발원지인 검용소 (黔龍沼)가 있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데도 말이다.

도로 건설공사로 주변 산자락이 무너져 내리자 흙과 돌로 계단식 사방 (斜防) 처리를 해 놓았지만 능선은 발가벗겨 놓은 듯 흉물스럽기 짝이 없다.

백두대간을 관통한 도로와 함께 산림청이 식목.산불진화.병충해 방제등 산림경영을 목표로 만든 임도 (林道) 도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96년말 현재 전국적으로 1만8백53㎞의 임도가 건설됐으며 이는 경부고속도로 길이의 25배나 된다.

하지만 임도로 산이 두동강 난데다 경사가 심해 차량이 들어 갈 수 없는 곳도 태반이어서 삼림훼손이 더 크다는 지적도 받고있다.

환경탐사대 서재철 (徐載喆) 팀장은 "백두대간의 숨통을 끊는 절개지는 우리 신체에서 허파를 떼어내는 것과 마찬가지 행위" 라며 "생태환경을 보전할 수 있도록 산악도로 건설시 터널식 공사를 최대한 의무화하고 임도도 주변환경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족의 영산 (靈山) 인 태백산은 군사지역으로 묶이면서 삼림파괴와 동.식물 서식지 단절의 중병을 앓고 있다.

백두대간의 허리인 태백산 (해발 1천5백67m) 은 한강.낙동강의 발원지이자 단군신화의 전설이 어린 곳. '단군세기' 에는 단군왕검이 태백산 단목 밑에서 삼신에게 제 (祭) 를 올렸다고 기술돼 있다.

하지만 지난 79년 백두대간 줄기인 구룡산 (해발 1천3백45m)에서 태백산에 이르는 서북쪽 능선 일대에 공군 전투훈련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태백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도립공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천년을 산다는 주목과 산철쭉.거제수나무등의 군락지인 태백산 주변 능선을 따라 폭 10m정도의 방제 통제선과 관제탑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맨살을 드러낸 도로 주변에는 벌목된 나무가 나뒹굴고 있다.

태백산 정상에 우뚝 세워진 천제단 (天祭壇) 위로 나는 전투기의 굉음과 진동에 동물들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버렸다.

만경사의 자성스님은 "예전에는 노루.토끼.오소리등 야생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고 아쉬워했다.

태백시번영위원회 김태웅 (金泰雄.52) 씨는 "태백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 주목.분비나무, 금강제비꽃등 희귀 수목의 생태 (生態) 박물관등을 조성할 수 있다" 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태백산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태백 =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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