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외교의 상업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장쩌민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지난달 29일 백악관의 국빈 만찬에는 2백여명이 참석했다.

엄선의 엄선을 거쳐 초청된 각계 초특급 명사들이었다.

이중 업계 대표 30여명은 눈길을 끄는 거물들이었다.

보잉의 필립 콘디트 회장을 비롯해 제너럴 모터스.월트 디즈니.애플 컴퓨터.IBM.AT&T.제너럴 일렉트릭.웨스팅하우스.카길.코닥.모빌 등 기라성 같은 업체의 회장.사장이 나타났다.

이날 밤의 '테마' 는 단연 '돈' 이었다는 느낌이었다.

이날 낮 정상회담의 주제도 마찬가지였다.

경제가 핵심 의제였다.

클린턴 대통령과 장쩌민 국가주석이 회담후 기자회견 장소에서까지 중국 인권문제를 놓고 격돌을 벌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회담의 기본 이슈는 돈버는 일이었다.

클린턴.장쩌민 회담이 '정상' 회담인지 '통상' 회담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어차피 탈 (脫) 냉전후 초 (超) 강대국간 '정상' 회담은 옛날 얘기가 돼버린게 현실이다.

예전 슈퍼파워 사이의 정상회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드라마가 연출됐다.

이데올로기와 파워의 불꽃 튀는 대결이 있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된 후는 얘기가 달라졌다.

발표된 클린턴.장쩌민 회담의 최대 성과는 중국이 미국 보잉사로부터 30억달러어치의 항공기를 구입하고, 미 정부가 6백억달러 규모의 중국 원자력발전소 건설시장에 미국업체 참여를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클린턴이 중국에 건넨 것은 장쩌민과의 대좌 (對坐) 를 제공함으로써 그의 대내외적 이미지를 제고시킨 것이다.

이제 외교와 상담 (商談) 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돼버렸다.

항공기 판매 상담이 더욱 그렇다.

리처드 닉슨이 베이징 (北京) 과 외교관계를 개설할 때 미국은 보잉사 여객기를 처음으로 판매했고 지난 봄 앨 고어 부통령의 중국 방문때도 보잉사 항공기 7억달러어치, 5대를 팔았다.

보잉사는 향후 20년간 중국 여객기 시장을 1천9백대, 1천4백억달러로 계산하고 있다.

미국이 천안문 (天安門) 사태 등 중국의 인권탄압과 무기수출 등을 문제삼아 양국 관계가 악화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중국은 유럽의 라이벌 에어버스에 15억달러어치의 여객기 판매실적을 넘겨주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부문도 사정은 비슷했다.

웨스팅하우스사는 앞으로의 시장규모를 7백억~8백억 달러로 추산한다.

중국 무기 수출에 대한 응징으로 미 행정부가 업체의 에너지분야 진출을 동결시켜 놓은 동안 1백20억달러의 거액이 프랑스.캐나다.러시아 에너지업체로 넘어갔다.

중국 당국의 정치적 또는 종교적 탄압을 규탄하는 다수 의원들, 미국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중국 무역역조를 맹렬히 공격하는 노조 (勞組) , 기독교를 박해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종교계, 티베트의 분리독립을 호소하는 친 (親) 달라이 라마 후원세력 등이 장쩌민의 행차를 전후해 청문회.시위 등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의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대결이 아니라 '포괄적 참여 (인게이지먼트)' 정책이었다.

12억 소비자를 안고 있는 거대한 시장과 고속 성장률 등 21세기가 되면 중국은 미국.일본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이란 전망이 그 정책의 근거였다.

클린턴은 이미 93년 집권때 각오한게 있다.

경제문제 해결에 국정운영을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클린턴 팀은 그 당시 미국 경제상황을 대공황 (大恐慌) 이래 최악이라고 파악했다.

통상 파트너들이 늘어놓는 공약 (空約) 은 '공황' 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인식했다.

당시 미 무역대표부 (USTR) 대표 미키 캔터는 "미 경제이익이 외교나 안보에 예속되던 시대는 끝났다" 고 선언했다.

결과론이지만 의회 등 미국 각계가 인권문제 등을 놓고 중국에 대해 맹렬한 압력을 가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클린턴 행정부는 장쩌민에게 워싱턴 초청이란 정치적 예우를 제공,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다.

'외교의 상업화 (商業化)' 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냉전이 끝난 세상의 변한 모습들이다.

한남규 <미주총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