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하르르·까르르·푸르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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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강가에 가 보자. 푸르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다. 어디선가 젊은 새댁이 까르르 웃었다. 순간 파랑새가 하르르 하르르 울며 날아갔다. 정적을 깨뜨린 파랑새의 몸짓(푸르르)이 앙증맞다.

‘하르르·까르르·푸르르…’. ‘르’의 쓰임이 돋보인다. 구르는 듯한 운율 때문에 혀까지 풀리는 것 같다. ‘하르르’는 힘찬 비상의 소리가 아닌 한숨 등을 힘겹게 몰아쉬는 모습을 나타낸다. 파랑새의 슬픔이 배어 있다. 이에 반해 ‘까르르’는 그야말로 자지러지는 웃음이다. 새댁의 때 묻지 않은 웃음….

바로잡으면 더 좋아 보이는 것도 있다. 작고 가볍게 몸을 떠는 모양을 뜻하는 ‘푸르르’의 영향을 받았는가. ‘푸른 하늘’의 ‘푸른’을 ‘푸르른’으로 적고 말았다. ‘푸르른’의 운율이 좋긴 하지만 ‘푸른’이 맞다.

‘푸른’의 기본형은 ‘푸르르다’가 아닌 ‘푸르다’이기 때문이다. ‘푸르러/푸르니’ 등으로 활용된다는 사실도 알아 두면 좋다. 어간 ‘푸르-’에 어미 ‘-ㄴ’이 붙으면 ‘푸른’이 된다. ‘푸른 마음, 푸른 바다…’. 받침(ㄴ) 하나가 뒷말을 현재형으로 꾸미며 생동감도 더했다. 

김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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