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모리야마·미국 그리피스 '마녀사냥' 동시출간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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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는 인간이 얼마든지 이성을 잃고 광기어린 행동을 집단적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세 이후 17세기까지 괜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무지막지하게 고문해서 원하는 자백을 받아낸 후 처형한 서양의 '마녀사냥' 은 그 대표적인 예다.

독일의 경제.정치문제의 원인을 유대인에게 뒤집어 씌운 나치의 행동이나 미국이 내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며 수많은 사람을 무고하게 몰아세운 메카시즘의 광풍 (狂風) 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마녀사냥' 이란 말은 '이성을 잃고 광기에 차서 집단으로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사회적 행동' 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마녀사냥' 이란 같은 제목을 가진 두권의 번역서가 나란히 출간돼 화제다.

바로 일본의 과학사상가 모리야마 스네오 (森島恒雄) 의 책 (현민시스템刊) 과 미국 어메리칸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로버트 그리피스의 저서 (백산서당刊) 다.

모리야마의 책은 중세 마녀사냥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통해 '심문을 받으며 공포의 빛을 보이면 마녀' 라는 기준이 버젓이 통용됐던 '마녀사냥' 시대의 집단논리를 소개한다.

이런 어이없는 행동이 중세 암흑기는 물론 휴머니즘과 합리주의가 싹트던 르네상스시대에도 버젓이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심지어 근대과학적 사고의 창시자격인 베이컨과 피의 순환을 발견해 근대의학의 효시로 꼽히는 하비도 마녀의 존재를 인정하고 심지어 재판에도 참여했다는 것. 저자는 인간 속에는 이성을 한순간에 누를 수 있는 광기어린 본질이 숨겨져 있으며 정치적.경제적인 이유와 결합하면 큰 폭발력을 가지므로 항상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피스의 책은 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비이성적 정치사건인 메카시 파동의 전말을 가장 정확하게 기술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 상원의원 매카시가 '요로에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다' 는 내용의 증거없는 연속폭로로 미국사회 전체가 이성을 잃고 반공열풍에 휩싸인 사건이다.

이 책은 이성을 잃은 정치적 마녀사냥의 이면에는 정치인의 집권욕과 폭로를 확인않고 마구 실은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 보수적인 미국인의 정서가 깔려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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