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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억울한 죽음…한이라도 풀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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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경남대 학생들이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좌우 이념 대결이란 게 도대체 뭐기에 이런 비극의 현장을 만들어내는 겁니까."

24일 오전 경남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 인적조차 드문 산골짜기에서 경남대 학생 10여명이 한국전쟁 때 벌어진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골 발굴작업을 하느라 두달째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남학생들이 돌더미를 옮긴 뒤 호미 등으로 흙을 걷어내자 여학생들이 대칼.붓 등으로 정성스럽게 유골과 유류품에 묻은 찌꺼기를 제거한다. 이어 노출된 모습을 10분의 1로 압축한 모눈 종이에 그린 뒤 유골.유품을 한사람분씩 구분해 조심스레 플라스틱 상자에 담는다.

가장 어려운 일은 폐광에 버려진 유골 수습. 갱내 물속에 잠겨 있는 유골은 대부분 육탈(肉脫)이 안돼 살점이나 머리카락이 붙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남대 문화재발굴 동아리인 '고인돌' 회원인 이들이 이번 발굴작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3일. 사학과 이상길(44)교수가 "한국전쟁 때 희생된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200여명의 유골이 산사태로 유출돼 나뒹굴고 있다"고 전하자 학생들이 "무참하게 죽은 사람들의 유골이나마 유족들에게 돌려주자"며 발벗고 나선 것이다.

전체 동아리 회원 20여명 가운데 당일 수업에 별 지장이 없는 사람 위주로 번갈아가며 10여명씩 참가, 이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오후 6시까지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작업 뒤 캠퍼스로 돌아와 당일 발견된 사항을 놓고 박물관 김미영(32)연구원과 밤늦도록 토론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학생들이 발굴해낸 유골은 150구.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15구쯤 더 발굴한 뒤 현장 작업을 일단락짓고 유골의 DNA를 분석해 연고자를 찾아줄 계획이다.

학생들은 최근 발간한 중간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발적으로 발굴에 참여한 것은 이념과 상관이 없다. 피해자들은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정상적으로 매장되지도 않았다. 보도연맹과 관련되었다지만 인간으로 대우받아 마땅하다."

◇보도연맹(保導聯盟)사건=보도연맹은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인사의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49년 6월 조직된 반공단체. 주로 사상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가입시켰으나 지역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니어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초기 후퇴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즉결처분을 단행했다.

마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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