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승진 인사 하려면 노조와 반드시 협의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남 목포시가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 제4조에는 ‘목포시는 조합원의 근로조건 및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련된 조례·규칙·규정의 제·개정 및 폐기를 하고자 할 때에는 노조와 반드시 사전에 협의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노동부 황보국 공공노사관계과장은 “목포시 의회의 입법제정권을 침해하는 월권 조항”이라고 말했다. ‘노동 강도 강화 등으로 정원을 늘릴 필요가 있을 때 정원의 확대 조정을 노조가 요구하면 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는 조항도 있다. 노조가 정원 조정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23일 목포시에 이런 조항들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목포시는 노조에 단협 개정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전국공무원노조 목포시지부 관계자는 “자치단체장과 노조가 자율적으로 맺은 단협에 대해 노동부가 압력을 넣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전국 자치단체·교육청의 상당수 단체협약이 법에 어긋나거나 인사 개입 등의 불합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가 공무원 노동조합법이 시행(2006년 1월)된 뒤 체결된 전국의 112개 공무원 단체협약을 분석한 결과다. 112개 단체협약 가운데 79.5%인 89개 기관의 단협이, 전체 1만4915개 조항 중 22.4%인 3344개가 노동관계법이나 공무원법에 위배된다. 또 교섭 대상이 아닌 사안을 담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부당노동행위를 조장하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의 단체협약에는 노조가 추천하는 2명을 전임자로 인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공무원노조법은 유급 노조전임자를 인정하지 않는데 유급 전임자를 인정한 것이다. 부산시 동래구는 노조가 요청하면 각종 시설물을 제공하고,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단협에 명시해 놨다. 이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노동부의 해석이다. 노동부는 ▶노조 간부의 유급 전임 인정 ▶노조 가입 금지 대상을 가입시키는 행위 ▶노조에 경비 지원 ▶근무시간 중 조끼 등 단체복 착용 등 이번에 적발된 조항들이 공무원노조법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인사권을 침해하는 조항도 많다. 서울 중구 단협에는 발탁인사(승진)의 시행 기준을 노조와 협의해 결정토록 했다. 부산시와 전남 영광군은 정책 실패와 관련, 조합원을 징계할 때 상급자도 징계토록 명문화했다. 이외에 동 단위의 감사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거나 전보 기준을 노조와 협의해 정하는 데도 있다. 전체 단협 조항의 49.5%가 이런 식으로 임용권을 제한하거나 인사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노동부는 분석했다.

경기도 화성시는 노조와 ‘조합원의 비상근무 명령 및 비상소집 시 노조와 사전에 협의한다. 단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사후에 설명할 수 있다’는 단협 조항을 만들었다. 이 노조 박상철 지부장은 “사후에 설명할 수 있도록 해놨기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복무명령조차 노조의 눈치를 보는 불합리한 조항”이라고 해석했다. 이처럼 위법하거나 불합리한 단협 조항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데는 부산교육청(49.6%)이었다. 이어 보성군(43.2%), 광양시(38.6%), 해남군(37.3%), 경남교육청(36/1%) 순이었다.

고려대 김동원(경영학) 교수는 “노조의 무리한 교섭 요구와 선거로 당선되는 지자체장의 정치적 고려가 어우러져 이런 불합리한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단협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노동부는 분석 결과를 행정안전부와 해당 지자체에 통보하고 자율적으로 고치도록 권고했다. 개정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처벌할 방침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제94조)에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해당 법인과 단체, 개인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금이 부과된 적은 없다. 노동부 이채필 노사정책국장은 “앞으로는 매년 단체협약을 분석해 곧바로 고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