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김대중총재 영수회담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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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여야 대선 후보 초청 첫 회담인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와의 24일 회담은 그야말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趙洪來 청와대정무수석 표현) 1시간20분간 진행됐다.

…오전8시5분 우유.계란을 곁들인 간단한 식사를 하며 시작된 회담에서 金총재는 "경치가 좋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밑에서부터 올라온 것이 보기 좋습디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소나무는 처음 보았어요" 라고 청와대 경관을 화제로 꺼냈다.

金대통령은 金총재가 "체중이 늘어난 것 아닙니까" 라고 묻자 "그대로입니다.

안 늘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金대통령은 "부인과 자제분들은 잘 있습니까" 라고 안부를 물었고, 金총재는 "잘 지냅니다" 라고 말했다.

이어 金대통령이 "정무수석이 배석해 있지만 격의없이 얘기해 봅시다" 고 하자 金총재는 "그럽시다" 고 화답했지만 20분후 趙수석은 金총재의 요청으로 회담장에서 나왔다.

회담 뒤 趙수석은 기자들에게 "단독회담인데 두분이 말씀하실 시간도 필요한 것 아닌가" 라며 "다른 분들과의 회담에서도 그런 시간을 가질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초 밀실 담합 의혹을 우려, 趙수석을 배석토록 했는데 金총재의 요청으로 단독회담이 이뤄진 점과 1시간여동안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발표내용이 적은 점등을 들어 '깊은 대화' 가 오갔을 것이란 추측이 무성하다.

청와대 일각에선 이 점 때문에 이회창 신한국당총재측이 담합설을 거론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도 보였다.

당에서 회담결과를 설명한 金총재도 이례적으로 기자들의 일문일답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등이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했다.

청와대와 국민회의 주변에서는 두사람이 나눴을 '깊은 얘기' 를 金대통령의 사후보장 문제, 전두환 (全斗煥).노태우 (盧泰愚) 전대통령의 사면, 김현철 (金賢哲) 씨 문제정도로 꼽고 있다.

金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건강,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현철씨와 김홍일 (金弘一.金총재 장남) 의원의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 며 교감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회동에 앞서 23일 밤 金총재의 일산 자택에서 핵심 참모들이 모인 구수회의가 있었다고 소개하고 "자식을 둔 아비의 심정으로 현철씨 문제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하는게 좋겠다" 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全.盧씨 사면과 관련, 국민회의 당직자는 "金총재가 全.盧씨 사면을 여러차례 건의해온 만큼 두분간 대화에서도 거론됐을 것" 이라며 "金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대선전 사면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건의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金총재도 회담을 끝내고 당사로 오는 차안에서 유재건 (柳在乾) 비서실장에게 "얘기를 많이 했다.

다 털어놓고 격의없이 대화했다" 며 결과에 대해 흡족해 했다는 것. 기자들에게 회동 결과를 설명하면서도 金총재는 여러차례 金대통령의 대선 중립 의지를 강조했으며 "기대했던 답변을 들었다" "앞으로의 문제에 대해 좋은 합의에 도달했다" 며 만족해 했다.

…한편 국민회의는 이번 단독회담을 비자금의혹 정국이 마무리되고 'DJ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가는 신호탄으로 해석, 반색했다.

"비자금 의혹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알았으면 말렸을 것" 이라고 말한 金대통령의 발언과, 때맞춰 터져나온 강삼재 (姜三載)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폭로극 배후' 공개로 '비자금 터널' 을 완전히 빠져나온 것으로 해석했다.

이영일 (李榮一) 언론특보는 "이로써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 의혹, 검찰의 수사유보 배후 작용설등이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 아니냐" 며 "오해를 풀게 된 것이 의외의 소득" 이라고 말했다.

박보균.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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