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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서유기’읽으며 죽음의 공포 달래

중앙일보

입력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화첩 ‘중국역사 회모본(中國歷史繪模本)’의 서문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기 나흘 전인 윤5월 9일에 쓴 마지막 친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고 23일자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국문학)가 20일 한국학 학술연구모임인 ‘문헌과 해석’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이 논문은 같은 이름의 계간지(여름호)에도 게재될 예정이다.

사도제자는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27세(1762년ㆍ영조 38년)에 뒤주에 갇혀 죽었다. 이 서문에는 사도세자가 ‘서유기’‘금병매’ 등 여러 소설을 섭렵했으며 조선왕조의 박해를 받은 천주교 서적을 읽었던 사실도 담겨 있다.

이 서문은 지금까지 저자가 단지 완산(전주)이씨로 기록돼 있어 영조의 딸인 화완옹주 등이 쓴 것으로 추정돼 왔다.

정병설 교수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역사 회모본의 서문을 사도세자의 유고 문집인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의 서문과 비교 분석한 결과 사도세자가 직접 쓴 글이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능허관만고에는 중국역사 회모본 서문에 있는 소설의 내용과 제목이 삭제돼 있으며 사도세자가 서문을 썼다고 기록한 장소가 당시 사도세자가 주인이었던 창경궁 통명전의 부속 건물이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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