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1200만 명 해외 나가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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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이슬람권의 자살 폭탄 테러는 한국인들에게도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오지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한국의 상사원·주재원들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연간 8000억 달러의 무역 총액을 기록하고 있다. 연간 출국자 수는 지난해 1200만 명을 넘어섰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한국인들에 대한 테러 위험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만 사흘 동안 두 차례 발생한 예멘 테러가 그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하지만 국민과 정부의 안전 의식은 여전히 불감증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테러에 대한 예측과 사전 정보 수집에 실패한 사실을 지적하는 여론이 높다. 외교통상부는 올 1월부터 이동통신사와 협약을 맺고 로밍서비스를 이용하는 해외여행객들의 휴대전화로 안전정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예멘 테러에 대한 정보는 발신하지 못했다. 사전 정보가 없었던 탓이다. 중동 지역에서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능력과 체제는 대단히 취약하다. 예멘 테러가 한국인을 겨냥한 표적 테러인지를 파악하는 게 초미의 과제로 떠올랐지만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 중동 국가 정보기관과의 협조에 기댈 뿐이다. 알카에다가 한국을 테러대상국의 하나로 지목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지난 5년간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 정보 수집망과 해외 각국과의 정보협조망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기껏 수집한 정보도 정부 부처들끼리 손발이 맞지 않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이 노출됐다. 국가정보원 산하 테러정보통합센터는 1월 말 예멘을 테러우려국가로 지정하고 “예멘에서 알카에다에 의한 테러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통보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안전경보로는 수도 사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예멘 지역은 사고 당시까지 미얀마·콜롬비아와 같이 여행 자제를 권고하는 수준인 2단계 경보에 머무르고 있었다.

정부는 예멘 테러 이후 연일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긴급한 용무가 없는 예멘 교민들에게 귀국을 권고하고 군중이 모이는 곳으로의 외출 자제를 당부하는 정도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다. 이 참에 종합적인 테러 예방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도 책임질 대목이 있다. 테러 예방의 법적 근거가 될 테러방지법안은 2001년 이후 8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지난해 10월 다시 발의한 ‘국가 대테러활동 기본법’ 이 제정되면 외교부 장관은 위험지역을 특정해 여행을 규제하거나 체류지에서의 대피도 ‘명령’할 수 있다.

공 의원은 “16대 국회 이후 매번 법안이 제출될 때마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입법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18대 국회에서도 야당인 민주당은 ‘MB악법’이라며 제정에 반대해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민과 여행사들의 안전불감증도 되돌아 봐야 한다. 15일 세이윤 테러를 당한 단체 관광객을 모집한 T여행사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예멘과 두바이를 묶는 관광 상품 안내가 올라와 있다. 하지만 테러 위험을 알려주는 설명은 단 한 줄도 없다. “기껏 만든 안전정보가 모객에 치중하는 여행사와 관광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이런 상황은 여행사들의 정보 고지를 의무화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올 9월 이후에야 해소될 전망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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