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3 흔들리는 지금이 한국차 도약할 완벽한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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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 파워의 제임스 D 파워 4세 수석부사장은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본사에서 “미국이 경기 불황을 겪고 있는 현 시점이 좋은 가격대의 현대차에는 완벽한 기회”라고 말했다. [웨스트레이크=남정호 특파원]

미국 회사들이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선전할 때 으레 등장하는 게 있다. ‘J D 파워 선정 OO 분야 1위’라는 문구다. 그만큼 미국 최고의 마케팅 정보회사인 J D 파워의 평가는 절대적이다. 이런 막강한 평가기관을 창업한 J D 파워 3세의 장남으로, 이 회사 국제담당 수석부사장인 제임스 D 파워 4세(49·사진)를 12일 캘리포니아 웨스트레이크 본사에서 만나 한국 자동차 등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노타이 차림에 부드러운 인상의 그는 “일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간다”고 했다. 자동차 분야에 정통한 그는 “세계적 불경기가 닥친 지금이 한국 차가 도약할 완벽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빅3가 흔들리면서 이들 회사의 고객들을 한국 차가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는 “보통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라며 “한국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선 세계적인 브랜드를 계속 창출하고 품질과 고객 서비스가 좋아졌다는 것을 홍보하는 한편 자선단체 지원 등으로 한국 기업들이 인류에 기여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한국 기업인들의 탈세 등 부정적인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한국 자동차를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차는 야심만만하고 성공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 같다. 특히 현대는 최근 놀랍게 변했다. 과거엔 자동차 품질과 판매에서 상당히 고전했지만 지금은 전략을 다시 세우고 추진하고 있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 디자인·기술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정상이 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현대를 변신에 성공한 회사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도요타·혼다 자동차 등과 비교하면.

“혼다는 모터사이클·레이싱으로 출발해 기술 개발에 힘 쏟는 반면 도요다는 효율성에 기반을 두고 고객서비스에 중점을 두는 기업이다. 현대도 이제 글로벌 회사가 되고 있지만 도요타·혼다만큼은 안 된다. 도요타는 품질·효율성 면에서 뛰어나고, 혼다는 연비가 높은 차를 만든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현대는 양쪽을 조금씩 갖고 있지만 아직은 고유의 이미지를 창조해 내지 못한 것 같다.”

-미국 소비자 사이에서 한국 차의 위치는.

“경기 불황으로 미국인들도 고급 차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게 됐다. 따라서 현 시점이 좋은 가격대의 현대에는 완벽한 타이밍이다. 좋은 가격은 결코 싸구려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구매자들이 자신이 산 제품을 자랑스럽게 느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인들의 인식이 바뀌었나.

-지난해 11월 LA 오토쇼에서 현대의 제네시스 옆에 많은 방문객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무척 놀랐다. 그들은 한국 교민들이 아니었다. 한국 차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50~70대의 안정된 백인들이었다. 그들은 이 차가 ‘무척 좋아 보인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들은 과거 GM·포드·크라이슬러를 샀던 계층이다. 한국 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 한국 차가 고쳐야 할 점은.

“미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 현대는 너무나 한국적인 회사였다. 색상· 재질 등 대부분을 한국인이 좋아하게 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인이 원하는 건 다를 수 있다. 한국인은 좋아하지만, 미국인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 디자인·색상 등을 차별화하라는 뜻인가.

“그런 셈이다. 특정 계층의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메이커에 신경을 쓴다. 벤츠·BMW·아우디·재규어 등을 구매하는 계층인데, 이들은 국경을 넘어 브랜드 고유의 특색을 원한다. 벤츠 S 클래스를 사는 구매자는 한국·미국·일본 어디에서는 똑같은 벤츠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도요타·혼다·현대 등 대량 판매를 노리는 업체들은 시장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 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가장 큰 불만은.

“여전히 안전성 등 품질에 대한 불만이다. 고객 서비스도 부족하다. 어떤 서비스가 제공되느냐는 회사 브랜드를 좌지우지한다. 한국 업체 간부들로 이를 잘 알겠지만 상대적으로 개선이 느리다. 제품의 품질 개선도 급하겠지만, 이제는 고객 서비스에 초점을 맞출 때가 됐다.”

-다른 한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는.

“자동차는 여전히 어느 나라에서 생산됐는지가 중시된다. 그러나 전자산업 같은 분야는 훨씬 세계화가 됐다. 소비자, 특히 젊은이들은 소니가 일본계인지, 한국계인지 전혀 따지지 않는다. 소니만으로 족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삼성과 LG도 똑같다. 이들은 그 브랜드가 어느 나라 건지를 따지기보다는 좋은 브랜드, 나쁜 브랜드만 생각한다. 글로벌화에 성공한 삼성·LG는 소니처럼 훌륭한 아시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자동차·전자를 뺀 다른 한국 제품의 경우 대체로 이미지가 긍정적이긴 하나 일본·스위스만큼 좋은 건 아니다. 중국제보다는 낫지만 중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한국 이미지를 높이는 방안은.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적인 브랜드를 계속 창출해야 한다. 더불어 품질 개선은 물론 고객 서비스에서도 나아졌다는 걸 홍보해야 한다. 또 서구 시장에서는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선행에 힘을 쏟는다는 이미지를 심는 게 중요하다. 자선단체 지원, 장학사업 등 사회적 통합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한국 기업인들이 탈세로 투옥됐다는 기사 같은 건 절대 국가 이미지에 득이 되지 않는다.”

웨스트레이크(캘리포니아)=남정호 특파원

◆J D 파워= J D 파워는 소비자 만족도, 제품 품질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토대로 기업들에 정보를 제공하는 국제적인 마케팅 정보회사다. 1968년 J D 파워 3세에 의해 설립됐으며, 2005년 미국의 세계적 출판사인 맥그로힐에 인수됐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소비자를 상대로 제품과 특정 분야에 대한 상세한 설문조사를 해 시장 반응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한다. 설립 초기에는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 의견과 평가를 수집하고 발표해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안전도와 신차 구입 2년 후 나타나는 문제점 등을 조사해 부문별 랭킹을 매긴다. 높은 평점을 받은 자동차 업체들은 이를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 자동차 랭킹시스템이 호평을 받자 J D 파워는 가전제품·통신·숙박업계 등 11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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