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을 만나다' 전시회 대담] 1. 김점선-최인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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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강남교보문고의 시화전 두 주인공. 최인호(右)씨와 달리 ‘길들여지지 않는 여자’김점선씨는 특유의 뚱한 표정이다.

화가와 소설가의 만남으로 기획된 문학사랑 주최 '그림, 소설을 만나다'의 두번째 이벤트 '김점선-최인호 전'이 서울 강남 교보문고에서 열리고 있다.

27일까지 계속되는 서울 전은 부산(부산 교보문고 29일~7월 5일) 전시회로 연결된다. 전시회의 주인공 최인호(59.소설가).김점선(58.화가)씨가 22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지는 다른 전시회의 작가.화가들도 지면에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점선씨가 괴팍하다구요? 인간 명품들이 본래 그런 거 아뇨? 실은 그분이 아내(황정숙)와 오랜 친구이기도 하지만, 내 눈에 김점선은 진짜 원시림이죠. 나 정도가 아나키스트라면, 그 분은 당당한 마적(馬賊)이죠, 마적."

왜 김점선씨를 시화전의 파트너로 찍었느냐고 물었더니 최인호씨가 즉답했다. 해방둥이 최씨가 크지 않은 체구에 여전한 동안(童顔)인데 비해 옆자리 김씨는 딴판이다. 덜렁 큰 몸집에 헐렁한 운동복과 시커먼 농구화 차림은 '마적 김점선'으로 딱이다. "머리에 깃털만 꽂으면 영락없는 인디언 추장"이라는 게 그와 절친한 동향(경기도 개성) 선배 박완서씨의 표현인데, 그 마적과 아나키스트는 안 어울릴 듯 잘 어울렸다.

지난 22일 강남 교보문고 이벤트홀. 때맞춰 출간된 최인호 글.김점선 그림의 '순례자의 꽃밭'(랜덤하우스중앙)도 뒤적이며 환담을 나누는 사이 대담 허리를 자르고 들어온 훼방꾼들이 있었다. 화가.소설가의 연식 서명을 받는 행운을 쥐려는 팬들이다. 현대문학의 큰 이름인 소설가 고(故) 김정한 선생의 막내따님 김은숙, 하나은행 워커힐 지점장 조소영(그는 무려 책을 10권이나 구입해 디밀었지만 밉지 않았다)씨 등이 그들이다.

"최인호 선생님 원고를 받은 게 지난해 말이야. 뭔가 이미지를 잡아내려고 원고가 너덜댈 정도로 읽었는데, 나중엔 영 헷갈려. 이게 내가 쓴 글인가 최인호 글인가…. 소설을 그림으로 그리는 게 힘들기도 하고 행복했지. 그림은 표현의 폭이 넓으니까 나는 행운아야. 안 그래?"(김점선)

"이거 영 면구스럽더라구요. 소설가는 옛 작품에서 좋은 글을 추려낸 것 말고 한 일이 없잖아요. 어쨌거나 시화전과 책 모두에 만족합니다. 여백이 널널하게 '따로, 또 같이' 노니까 좋네요."(최인호)

김점선은 컴퓨터 그림. 디지털 프린트로 뽑아 판화처럼 에디션이 있다. 가격은 20만원. 꽤나 높은 작품 가격에 비해 파격적이다. 여고생들도 구입할 수 있게 배려했단다. 그가 즐기는 말.오리 등의 모티브가 빠질 리 없다. 자기 그림은 "감히 언어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순수시각"이라고 주장('10㎝예술' 98쪽)했던 데서 좀 양보한 셈일까? 최씨의 글은 대표작 '술꾼''사행(斜行)'등에서 가려 뽑았다. 즉 최인호 명문장 모음집인 셈이다. 앞뒤 설명을 위해 작품설명을 붙인 입체적인 컨셉트이고, 그 사이에 그림들이 녹아 있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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