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경쟁·자존심 … 100년 샤넬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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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비결 1

여성들의 양손 자유롭게 하자
어깨끈 달린 핸드백 처음 내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가브리엘 샤넬 여사가 귀족 여인들에게 모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1909년. 이후 샤넬은 패션에 문외한인 사람도 알 만한 여러 ‘장수’ 상품을 내놓았다. 21년 처음 나온 ‘샤넬 No.5’ 향수는 그 모양 그대로 80년 넘게 팔리고 있다. 55년 2월 출시해 ‘2.55 백’이란 별칭이 붙은 핸드백은 지금도 생산량이 달릴 정도로 인기다. 파리 본사에서 샤넬을 이끄는 핵심 리더들을 만나 샤넬이 긴 세월 사랑받는 비결을 들어봤다.

◆50년, 80년 된 상품 불티=9일 파리 중심 생토노레에 있는 샤넬 부티크 매장. 한 중국인 여성이 ‘2.55 백’ 중 소가죽과 양가죽, 검정·크림·핑크색 등 여러 색깔, 여러 크기의 가방을 고르다가 2000유로(약 400만원)대 가방 두 개를 사 들고 매장을 나섰다. 샤넬 여사는 55년 누빔 처리한 가죽백에 금색 체인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는 핸드백을 고안했다. 바로 ‘2.55 백’이다. 어깨끈이 달린 핸드백은 처음. 이전까지 핸드백을 손에 들거나 팔에 끼어야 했다. 이 상품은 “여성의 양손을 자유롭게 해줬다”는 평가를 얻었다.

어깨끈이 달린 핸드백 ‘2.55 백’(左).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中). 80년 넘게 인기를 끌고 있는 샤넬 No.5 향수(右).


17년 샤넬은 여성들이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바지를 선보였다. 26년 처음 내놓은 무릎 바로 위 길이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현대 여성 의상의 원조로 불린다. 처음으로 이미테이션 장신구를 내놔 귀족이 아닌 여성들도 예쁘게 꾸밀 수 있게 했다. 보헤미안 유리 보석, 인조 진주 등을 고급스럽게 세공한 ‘코스튬 주얼리’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상품이었다.

비결 2

한 곳서만 물건 받으면 느슨해져
자체공방 아닌 곳서도 납품 받아

파리에 있는 샤넬의 자수공방 ‘메종 르사주’에서 한 장인이 의상 장식을 만들고 있다.

◆경쟁이 경쟁력=12일 파리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모자 공방 ‘메종 미셸’. 숙련된 장인들이 챙 넓은 밀짚모자와 겨울모자를 만들고 있었다. 73년 된 이곳은 모자 모형만 3000개를 보유한 전문 작업실이다. 96년 샤넬이 지분을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했다. 메종 미셸은 샤넬에 모자를 납품하지만 동시에 지방시·니나리찌·크리스찬라크르와 등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에도 모자를 댄다. 마찬가지로 샤넬도 메종 미셸뿐 아니라 다른 공방에도 모자를 맡긴다.

메종 미셸 책임자인 파스칼 오르두앵은 “한 회사에 한 업체만 물건을 대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기술이 뒤처져 결국 경쟁력을 잃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이 넘은 자수공방 ‘메종 르사주’에는 지금까지 만든 자수 패턴 3만5000개가 소장돼 있다. 각 패턴에는 디자이너 이름과 패션쇼 날짜가 적혀 있어, 옛날 디자인을 보고 영감을 얻거나 옛 디자인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할 때 종종 찾는다. 샤넬 수석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가 건네는 디자인이나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곳이다.

‘메종 르사주’도 샤넬이 2002년 인수한 뒤에도 계속해서 크리스찬디올·이브생로랑·발렌시아가 등 경쟁 브랜드와 협력해 일한다. 라거펠트 역시 다른 명품 브랜드인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도 겸하고 있다. 펜디는 루이뷔통이 속한 경쟁회사 LVMH의 계열사다. 화장품 부문 수석 크리에이터인 피터 필립스도 샤넬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 심지어 경쟁사와도 메이크업 작업을 한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창의성을 키우고 이를 마음껏 발휘하는 게 샤넬에도 도움이 된다는 기업 철학 덕분이다. 10일 파리 컬렉션에서 만난 라거펠트는 “운이 좋게도 난 무엇으로부터도 창의성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결 3

제품 제작 기준은 ‘샤넬스럽게’
매출보다 브랜드 지키기 최우선

◆브랜드가 최우선=파리 시내 샤넬 본사 건물 3층에는 방 3개짜리 ‘샤넬 아파트’가 있다. 접견실은 71년 샤넬 여사가 세상을 뜬 뒤에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중국에서 온 듯한 병풍과 불상, 일본산으로 보이는 화병 등 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골동품이 가득하다. 널찍한 소파에는 그가 항상 앉았다는 자리가 그대로 꾸며져 있다. 마리 루이즈 드 클레르몽 토네르 대변인은 이곳을 “샤넬의 심장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샤넬이 제품을 만들 때의 기준은 하나다. ‘샤넬 여사가 좋아했을까’라고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빈센트 쇼 아시아담당 사장은 “우리의 목표는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수백 년 가게 하는 것”이라며 “브랜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올 초 롯데백화점 7개 점포에서 샤넬 화장품 매장을 철수한 결정을 염두에 둔 설명이다. 롯데가 백화점 내 좋은 자리를 차지하던 샤넬 화장품 매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자 샤넬은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다며 아예 매장을 빼버렸다. 샤넬은 개인 기업으로 경영 실적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 덕분에 판매 확대나 이익 극대화 같은 일반적인 기업의 가치보다 브랜드나 독창적인 제품을 우선시할 수 있었다. 피터 필립스는 “마케팅이 중요하지만, 이를 앞세우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게 되고, 그러면 샤넬만의 독창성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파리=박현영 기자

◆샤넬=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이자 기업. 고아였던 가브리엘 샤넬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자산가의 도움으로 파리에 1909년 모자 가게를 연 게 효시다. 그는 짧은 챙 모자, 통 넓은 바지, 무릎 길이 원피스, 박스형 여성 재킷, 어깨에 메는 핸드백을 세상에 처음 내놔 현대 패션의 창시자로 불린다. 여성들이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자유와 아름다움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83년부터는 칼 라거펠트가 수석 디자이너로 샤넬을 이끌고 있다. 의류·가방·구두·화장품·향수·시계·보석을 만든다. 샤넬의 초기 사업 파트너였던 베르타이머 가문의 자손이 현재 오너다. 샤넬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후세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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