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약 공부 더 한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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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식 정책기획부 기자

약대를 4년제에서 6년제로 만드는 방안에 대해 약사회와 한의사회가 어렵사리 합의했지만 잠잠했던 의사단체와 의대생들이 22일 반대 성명서를 내는 등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 방안을 둘러싼 한(韓).약(藥).의(醫).정(政)의 행보를 보면 마치 '갈등의 종합백화점'을 보는 듯하다. 각자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강변한다. 양보는 안중에도 없다.

약사회는 "공부를 더 많이 해 서비스를 더 잘하겠다는데…"라며 한숨을 내쉰다. 생명공학과 관련된 약학과 실습을 추가해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남의 일인 듯한 약대 6년제에 한의사와 의사들이 반기를 드는 속사정은 뭘까.

약사와 한의사는 1993~96년 한약분쟁 때 한약 취급권을 두고, 약사와 의사는 2000년 의약분업 분쟁 때 양약의 취급권을 놓고 사활을 건 싸움을 했다. 그 뒤에도 사사건건 대립하더니 이번엔 '더 배운 약사가 의사 노릇도 하고 한약도 더 손대려할 것'이란 불신으로 나타났다.

복잡한 듯하지만 냉정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의사들은 "지금도 약사들이 진료행위를 일삼고 있는데 6년제가 되면 오죽할까"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약사들이 더 배우는 것과 '의사 노릇'은 무관하다. 6년제로 늘린다고 해서 의학을 배우는 게 아니다. 약사들이 더 공부해 의사의 약 선택 등을 도와 준다면 진료의 질이 올라간다.

만약 약사가 의사 역할을 할 의도가 있다면 4년제를 나오건, 6년제를 다니건 관계없을 것이다.

약사회는 21일 한의사회와 함께 발표한 합의문에 '절대 의사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또 약사가 의사 노릇을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받는다.

약사들도 의약분업 전 사실상 의사 노릇을 하던 데 대한 '향수'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는다. 지금처럼 계속 갈등을 빚는다면 "또 싸우느냐"는 국민의 지탄을 받을 테고 그러면 모두가 상처를 입는다. 언제까지 국민건강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을 할 텐가.

신성식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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