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서면 재산도 갈라야 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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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 하반기 여성계가 현행 민법 중 부부재산제와 관련된 법 개정 운동으로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오는 29일 오후 2시 상담소 6층 강당에서 부부재산제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관련법 개정안을 발표한다.

이에 앞서 서울 YWCA는 지난 16일 부부재산 공동명의제를 주제로 한 포럼을 개최했으며 서울 여성의 전화도 5월 말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다.

◇사이 나빠지면 불거지는 돈 문제=강모(45)씨는 외도와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2년 전부터 이혼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18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온 강씨에게는 밑바닥 보이는 통장 몇개만 있는 형편. 게다가 이혼을 작정한 강씨의 남편은 자신의 이름으로 돼 있던 집 두채를 몰래 팔아치웠다. 강씨는 "이혼할 경우 맨손으로 쫓겨날 판"이라며 "그동안 애 키우고 살림한 것은 어디서 보상받느냐"고 하소연했다.

부부 사이가 좋을 때는 집 등기나 예금통장 등을 누구 명의로 하느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갈등이 생기고 이혼으로 치닫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전업주부가 위기 상황에서 겪는 경제적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부부 재산제와 관련해 상담한 건수는 모두 907건. 이 중 배우자 몰래 일방적으로 재산을 처분한 경우가 전체의 18%인 164건을 차지했다. 이혼 시 아내에 대한 재산분할 비율을 턱없이 낮게 제시한 경우도 27%(243건)나 됐다.

◇실제로는 불평등한 부부별산제=한국여성의 전화연합 신연숙 인권국장은 현행 민법상의 부부별산제가 개정돼야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별산제는 부부 각자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할 수 있다. 형식적인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가사와 육아 부담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부 별산제는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제도"라고 신 국장은 지적한다.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가정법률상담소가 2001년 전국의 성인 남녀 2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동산을 남편 명의로 한 경우가 전체의 66.3%, 아내 명의가 26.4%, 부부 공동명의가 6.7%를 차지했다.

이혼 시 재산분할을 받을 때도 여성의 가사노동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판례상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기여도는 재산의 3분의 1 미만. 취업 주부의 경우는 2분의 1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의 이름으로 돼있는 재산을 부부 공동 명의로 바꾸기도 쉽지 않다. 상당액의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하는 재산이 3억원 미만일 경우 증여세는 면제되지만 2%의 취득세와 3%의 등록세를 물어야 한다. 즉 1억원의 재산을 이전할 경우 500만원 이상의 세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부부 공동 명의 땐 비과세로"=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29일 발표하는 민법 개정안은 부부 별산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되 주택 등을 처분할 경우 등에는 배우자의 동의를 얻도록 정하고 있다. 개정안 작업에 참여한 부산대 김상용(법학과)교수는 "이혼을 앞두고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개정안은 ▶이혼 시 부부가 결혼 생활 중 증가한 재산을 절반씩 나누고▶결혼 중에도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며▶ 재산 상속 시 상속분의 절반을 배우자가 먼저 상속받고 나머지 절반을 자녀와 함께 균분토록 하고 있다.

가정법률상담소는 이 같은 개정안을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등의 의원입법으로 9월께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서울 여성의 전화는 부부 개인 명의를 공동명의로 바꿀 경우 물게 되는 세금을 일정 기간 비과세로 하는 세법 개정 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주요 3당은 이 같은 여성계의 요구를 17대 국회에서 해결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지난 15일 모임을 한 열린우리당 여성의원 네트워크도 적극 동참키로 해 부부재산제 관련 민법개정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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