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차손·평가손 문제 어떻게 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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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원화환율 급상승에 따른 환차손과 주가하락으로 인한 주식평가손의 회계처리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당사자들인 금융기관과 상장기업들이 이들을 그대로 회계장부에 반영할 경우 적자결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식평가손등을 한꺼번에 반영하지 말고 일부만 반영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융통성을 두고 있으나 회계자료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어 고민하고 있다.

환차손.평가손 문제가 불거진 원인과 처방등을 알아본다.

"장사를 잘하면 뭐합니까. 이익의 상당부분을 환차손으로 날려보내는 형편이예요. 그렇다고 뾰족한 대비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 " 쌍용정유 조영일 (曺永一) 외환자금부장의 하소연이다.

기업마다 막대한 환차손으로 경영수지가 나빠지자 올 사업계획을 수정하거나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등 비상이 걸렸다.

동원경제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12월 결산법인 5백55개업체의 상반기 환차손 규모를 보면 2조6천3백8억원에 이른다.

이는 올 상반기 상장사 총 경상이익의 89.8%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 모두 손익에 반영할 경우 회사당 경상이익은 고작 4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헛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상장회사들의 달러화 부채가 4백79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상황에서 달러대비 원화 환율은 올들어 1달러당 8백40원대에서 9백10원대까지 8%이상 오르며 이자부담이 그만큼 더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에서 시설재나 원유등을 많이 도입해 쓰는 기계.선박.항공.정유업체들이 상대적으로 큰 환차손을 입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달러당 9백10원을 기준으로 기업별 올 환차손 추정액을 조사한 결과 한국전력이 4천9백9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론 대한항공 (3천6백52억원) , 삼성전자 (3천4백47억원) , 유공 (2천2백50억원) , 한진해운 (1천7백33억원) 등의 순이었다.

문제는 환차손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않다는 점. 우선 국내 선물환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수출입규모 (지난해 2천8백억달러)에 비해 턱없이 작다.

한국은행이 개입할경우 하루 10억달러에 이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하루에 1억달러도 채 안되는 실정이다.

그만큼 환율을 예측해 미리 달러를 사두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설사 선물환거래를 늘리려해도 회사에서 이를 투기로 여겨 아예 선물환거래를 금지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한 자동차회사의 외환팀 한 관계자는 "달러를 미리 확보해 차입금을 갚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며 최고경영층에서 장려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이에따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외화시장에서 환차손을 방어하는 방법은 거의 쓰지 않고 달러부채 규모와 상환기간을 조정하는등 임시처방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우는 최근 원화를 동원해 달러부채를 상당액 갚았고 외화부채의 이자율도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대우중공업은 선박건조 주문량이 늘어나고 있으나 환율추이가 불안해 3년후에 인도되는 선박수주는 아예 하지 않고 있다.

정유업체의 경우는 환율이 10원 오르면 업계 전체적으로 6백억원의 손실을 낳는데 최근엔 환율상승폭만큼 유류소비자 가격에 전가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전은 외화부채가 85억달러에 이르러 환차손 방지가 발등의 불이 되자 국내금융기간을 통해 다른기업의 원화 부채를 한전이 갚아주고 대신 그 기업이 한전의 달러부채를 갚아주는 '통화스와프' 를 추진중이나 아직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일부기업은 원화를 빌려 달러를 사는 방식도 취하고 있으나 자금시장 경색에 따라 이마저 여의치못한 실정이다.

대한항공은 올상반기 외환수지 적자가 8백38억에 이르고 달러로 빌린 외화부채가 45억달러에 이른 가운데 원화가치가 계속 떨어지자 외화차입구조를 달러에서 엔으로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또 항공기도 렌탈방식으로 들여와 직접구매에 따른 환차손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전략으로 항공기 구매방식을 바꾸는등 비상이다.

대우경제연구소의 한상춘 (韓相春) 연구위원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덜어주고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무역거래를 할 수 있는 '환위험보험제도' 를 시급히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환위험보험제도는 대외무역 결제대금의 환율을 미리 확정해 대금결제시의 환율 차이를 보상하는 제도로 영국.프랑스.독일등 선진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또 ㈜유공등 일부업체들은 선물환시장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다.

뻔히 달러값이 올라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달러 매물 규모가 작다는 주장이다.

이 회사 외환팀의 한 관계자는 "하루평균 달러결제자금이 4천만달러에 이르는데 선물환으로 사들이는 달러는 미미한 수준" 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의 한 관계자는 "외화금리가 원화금리보다 싸기때문에 기업들이 외화차입을 선호하고 이로인해 환차손을 크게 입고 있다" 며 "값싼 원화자금을 기업들이 자유롭게 쓸수 있도록 각종 금융규제부터 우선 풀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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