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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회의' 고수…채권단,"조기해결" 목소리 높아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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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채권단의 최후통첩 기한이 지났으나 달라진게 없다.

기아는 화의 (和議) 를 고수하고 있고 채권단은 법정관리로 분위기를 잡고 있다.

별다른 돌출변수가 없으면 당분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수도 있다.

기아는 대통령선거가 끝난후 새로 짜인 정치판에서 활로를 찾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화의가 바람직하다' 는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총재와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총재의 발언에 고무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중 누가 당선돼도 지금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새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정부.채권단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3개월간 끌 경우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협력업체들부터 문제다.

이들은 기아가 화의를 신청한 지난달 22일 이후 어음할인을 못받고 있다.

유일한 자금줄은 기아가 주는 현금뿐이다.

기아는 이를 자동차 판매대금만으로 대야 한다.

기아가 한달에 벌어들이는 판매수입은 대략 5천억원이다.

그러나 기아는 지난달에도 협력업체들에 줄 물품대금을 일부 지급하지 못했다.

밀린 돈과 이번달에 지급해야 할 돈을 합치면 한달 판매대금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협력업체의 대금결제는 이달 중순 이후로 집중돼 있다.

이달을 기아가 혼자힘으로 넘길지 여부가 앞으로 기아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갈림길이 될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기아는 이 고비를 넘기고 대선이후 새로 처리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채권단은 언제 어떤 방식의 방법을 내놓더라도 추가지원 없이는 해결의 길이 없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새 정권이 김선홍 (金善弘) 체제를 지켜주면서 추가지원까지 해주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다면 지금까지 취해왔던 정부.채권단의 원칙은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다.

특혜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채권단의 분위기는 점점 '강경' 쪽으로 쏠리고 있다.

어느 쪽이든 빨리 결말을 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기아가 화의를 고수하고 주요 채권은행이 거부입장을 정한 이상 그 '결말' 의 내용은 뻔하다.

벌써 일부 은행은 채권단이 먼저 법정관리를 신청하자는 말을 비치고 있을 정도다.

자금시장에서도 비슷한 반응이다.

종전에는 법정관리보다 화의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덜하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법정관리냐, 화의냐로 결정도 내리지 못한채 시간만 질질 끄는 것 자체가 더 부담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따른 충격은 이미 시장에 다 반영돼 있다고 본다" 며 "어느쪽이든 빨리 해결책이 정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장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당초 채권단은 직접 법정관리를 신청하지는 않겠다고 했었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류시열 (柳時烈) 행장도 "기아가 화의를 고집해도 채권단이 먼저 법정관리를 신청하지는 않을 것" 이라고 말해왔다.

이때문에 기존의 방침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두고 명분을 찾을지도 모른다.

협력사의 연쇄도산, 종금사의 자금난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명분이 될 가능성도 있다.

남윤호·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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