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같은 학생들 가르쳐 4년간 검정고시 100% 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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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 모인 용마루학교 청년 교사들. 이 학교의 어머니 학생들은 늦깎이 공부가 결코 창피한 일은 아니지만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누를 끼치게 될 것 같다며 사진 촬영을 극구 사양했다

27일 오후 7시 인천시 남구 주안2동 B빌딩 3층 용마루학교. 5평 남짓한 공간에 앳된 대학생이 중년 여성들을 상대로 지구 온난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는 대기온도가 점점 높아지는 현상으로 이산화탄소와 같은 기체가 대기 중으로 배출되면서 일어납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성들은 어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적느라 바빴다.

이 학교는 1974년 인하대 동아리인 인하선도회가 'A Penny Club(동전 한 닢)'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작은 야학으로 늦깎이 공부에 나선 사람들을 위한 공부방 노릇을 하고 있다. 현재 이 학교에는 고졸 검정고시 과정을 공부하는 진(眞)반 학생 5명과 선(善)반(중졸 검정고시) 학생 6명이 다닌다. 모두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머니들이다.

매주 월~금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운영되는 야학의 교사는 인하대 재학생 17명이 맡고 있다.

올해로 3년째 야학 교사를 하고 있는 김세영(21.여.경영학과 3년)씨는 "어머니 같은 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오히려 좋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나 사람 대하는 요령 등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 야학에 참여한 이영하(20.아태물류학과 1년)씨는 "보람찬 대학생활을 보내기 위해 야학 교사를 자청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당분간 선배들처럼 고교 교과과정을 다시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교사들의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 4년 새 졸업한 학생 24명 모두가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올해로 31년째인 이 학교 졸업생은 160여 명에 달한다.

진반 학생 김모(59.여)씨는 "어린 선생님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자며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다"며 "자식뻘이지만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학 살림이 넉넉지 않아 어려움도 겪고 있다.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 등에서 매년 1500만원 정도를 지원받지만 월세와 학생 교재비를 충당하기도 벅차다. 월세 때문에 2~3년마다 이사하는 것이 이제는 학교 전통(?)이 돼버렸다. 교사들은 보다 넓은 공간에서 월세를 고민하지 않고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하선도회 회장 신조훈(27.물리학과 4년)씨는 "배움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며 "용마루학교는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사진=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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