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카투사 고시(?) 열기 과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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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최근 공개된 올 카투사 (KATUSA.미육군배속 한국군) 시험의 토익 커트라인은 약 8백30점. 지난해에 비해 무려 60점이 높아졌다. 1천명 모집에 3천여명이 몰렸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점수가 턱없는 경우 아예 응시를 포기했을 것을 감안하면 살벌한 경쟁이다. 하지만 일차 관문을 통과한 젊은이중 상당수는 다시 면접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할 터. 재수·삼수의 길로 들어선 사람을 보노라면 뭔가 가슴이 썰렁해진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길은 두 갈래다. 한 길은 한국군이고 다른 하나는 미군부대다.

한국 군대로 뻗은 도로는 워낙 넓어서 피해갈 수가 없어 보이는데 미군부대로 가는 길은 영락없는 바늘구멍이다. 미군부대원이 되기 위해, 즉 카투사로 복무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관문은 토익시험. 미리 시험을 치러 성적표를 받고, 이를 1년에 한번 있는 카투사 선발기간 중에 제출해야 한다.

점수가 높다고 미군부대로의 입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면접관문이 기다린다.

인상이 좋지 않거나 심한 팔자걸음등 보행자세가 불량할 경우엔 불합격이다.

국가관도 당락의 변수가 되고 신원조회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통로도 있다.

논산훈련소에서 영어시험을 거쳐 선발되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 역시 토익시험등 객관적 자료로 결정하면 될텐데 그렇지가 않다.

과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군대의 '줄서기 운 (運)' 논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건지. 아니면 무언지. 가령 이런 것이다.

논산훈련소에서 '행운' 을 잡은 한 카투사의 말. "논산에서 훈련을 받던 도중 소대원 40명 가운데 6~7명을 불러 영어 듣기시험을 치렀고 그중 절반가량이 합격했습니다. 무척 기뻤죠. 막상 배치를 받고 나니 괜히 들러리만 선 기분도 들었습니다.

같은 카투사라도 부대나 보직에 따라 여건이 천차만별이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카투사가 돼도 "큰 잘못을 저지르면 한국군으로 보낸다" 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어 마음을 놓을 순 없다.

간혹 미군이 던지는 인종차별적인 언사에는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이런 겹겹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의 마음은 간절하다.

"입대를 앞둔 친구나 선배 대부분이 카투사를 가고 싶어합니다. 다른 과의 경우도 비슷해요." 서울대 인류학과 1학년 전지원 (19) 양의 얘기다.

여기다가 "올핸 실패했지만 내년 합격을 위해 영어공부에 다시 돌입한다" 는 명문대생인 서모 (21) 군의 다짐 하며….

굳이 카투사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내무생활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거지요. 고참이라고 이유없이 괴롭힌다거나 괜한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 동두천에서 근무하는 K상병의 얘기는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소대원 대부분이 미군이라 내무반 군기라는 개념이 없고 같은 카투사끼리도 선.후임병간 규율은 있되 서로 상식선을 넘지 않죠."

또 하나 매력은 일과시간 준수다. 오후 5시 이후엔 철저하게 자유를 보장해준다. 정신교육이다, 작업이다 하면서 쉬는 시간을 뺏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잔업은 많아야 1주일에 한 번 정도. 토.일요일의 휴식이 완벽하게 지켜지는 것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용산에서 근무하는 L상병은 논산훈련소에서 잠깐 맛본 한국군 시절과 대비한다. "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데도 매주 교회를 갔습니다. 내무반에 남아 있으면 김장작업등에 동원될 게 뻔했으니까요."

그가 들려준 논산훈련소에서의 경험담. "하루는 중대장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런데 대대장 순시가 있다는 연락이 왔어요. 한 소대장이 '전투체육의 날이니 체육복을 입으라' 고 말하고 나가면 잠시후 다른 사람이 들어와 '대대장 오시니 군복을 착용하라' 고 지시했죠. 그날 옷을 정확하게 열네번 갈아입었는데 결국 대대장은 안왔습니다. " 안타까운 사연이다.

카투사 간 친구들이 일과외 시간 중 영어공부는 물론 고시준비까지 하는 판에 우리 군에 있는 친구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 . 우리라고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못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병사들을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것을 흔히들 군기 (軍紀) 때문이라들 한다.

그래야 딴생각 안하고 사고도 없다 운운. 하지만 전투력 수준을 결정짓는 군의 진짜 사기 (士氣) 는 이런 유형의 군기와는 별개 아닐까. 미군의 전투력이 한국군보다 못하다는 공식기록이 나와 있지 않은 한 말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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