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한강의 기적' 벤치마킹 … 연 평균 7.4%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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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베트남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꼽힌다. 사회 모든 부문에 개혁과 개방 열기가 대단하다. 30년 전 공산정권이 들어서 자본주의 세력 추방에 나설 때만 해도 오늘의 베트남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의 적국이었다. 서로 앙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앙금이 있을 법한 자리는 '한류'와 경제 교류가 채우고 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다.

◆ 도이모이(개혁.개방)="한국에 '한강의 기적'이 있다면 베트남엔 '홍강의 기적'이 있다." 베트남의 경제 발전을 두고 외국 언론이 한 말이다. 홍강은 베트남 북부지방을 흐른다.

개혁.개방은 1991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도 무오이 총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개혁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특히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을 많이 벤치마킹했다. 그해 시장경제가 도입됐고 사유재산도 부분적으로 인정됐다.

지난 2월 베트남 사회과학원과 유엔개발계획(UNDP)은 도이모이 성과에 대한 세미나를 베트남에서 열었다. 응우옌떤중 수석부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우리의 경제 개혁은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선언은 수치로 증명됐다.

91~2004년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7.4%에 달했다. 2000년 국내총생산(GDP)은 91년 대비 두 배로 늘었다.

경제 성장의 실탄격인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급증했다. 88년 37건에 3억7000만 달러였던 FDI는 지난해에는 40여억 달러로 10배 이상 늘었다. 1인당 GDP는 86년 114달러에서 지난해 490달러로 껑충 뛰었다.

정치.외교 방면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92년 공포한 개정헌법은 사회주의에 입각한 시장경제 체제를 분명히 했다. 2003년에는 국회의 대정부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법을 마련해 권력기관 간 상호 견제를 제도화했다. 외교 분야에서는 철저히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 한국과의 관계=지난해 국내 한 화장품회사가 베트남에 진출해 세계 유명 메이커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광고에 탤런트 김남주를 등장시킨 것이 비결(?)이었다. 베트남에서 한류 열풍을 짐작하게 하는 사례다.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산당 서기장 이름은 몰라도 장동건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에서 방영된 이후 지금까지 한류 열풍은 식지 않고 있다. 대중잡지에 한국 배우들의 기사가 실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현재 베트남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의 80%가 한국 드라마다.

베트남의 한류 전문기자인 티우응언(29.여)은 "한국 드라마는 가족 전체가 다 볼 수 있고 내용도 극적인 요소가 많아 베트남 국민을 사로잡는다"고 말했다. 한류는 경제로 이어졌다. 90년 1억5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교역량은 지난해 39억 달러로 늘었다. 올해는 50억 달러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업체는 800여 개다. 2003년 베트남 전체 수출액(201억8000만 달러)의 11.6%(23억3000만 달러)는 현지 한국기업의 실적이다.

팜띠엔 주한 베트남 대사는 최근 "양국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극복했고 경제를 중심으로 한 협력 관계를 증진시켰다"며 "미래를 위한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산적한 문제=농득마인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 2월 초 "상당수 공산당원이 관료주의적이고 부패했다"고 말했다. 부패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2003년 한 해 동안 14개 대형 국영기업체에서 공금 유용 등 비리로 인해 손해 본 돈이 7900만 달러였다. 이들 업체 전체 예산의 19%에 이르는 액수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3000여 개의 국가사업 중 비리 손실액은 34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같은 공직부패는 해마다 10%씩 늘고 있는 추세다. 홍콩의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는 베트남의 부패지수가 10점 만점에 8.65였다고 발표했다. 아시아 최하위권이다. 베트남 내 외국 기업인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매년 고성장을 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젊은 인력을 소화하지 못해서다. 지난해 말 현재 베트남 인구는 8000여만 명. 이 중 65%가 30세 미만의 젊은층이다. 현재 정부가 밝힌 실업률은 도시지역 6.0%, 농촌지역 30%다. 그러나 실상은 도시지역 실업률이 20%를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형규 기자

▶ ㈜대명의 박승림(앞줄 가운데) 사장과 베트남인 직원들.

*** "느릿해 보이는 베트남 사람들 결정적 순간엔 빈틈 없습니다"

"베트남은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나라입니다."

베트남 다낭시에서 의류공장 ㈜대명을 운영하는 박승림(55)사장은 마주 앉자마자 베트남 홍보에 열을 올렸다.

"베트남은 세계 수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겉으론 느릿느릿해 보여도 결정적 순간에는 빈틈이 없다" 는 등의 얘기를 숨 돌릴 틈없이 이어갔다.

박 사장은 1995년 다낭에 진출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이 지역에 회사를 만들었다. 그는 "대기업에 수년간 근무하다 개인사업을 차렸으나 여의치 않아 미국이나 중국으로 회사를 옮기려다 '신천지' 베트남을 선택했고, 베트남에서도 호찌민(옛 사이공)이나 하노이처럼 우리 대기업이나 자영업자가 많은 곳이 아닌 곳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정착 초기에는 베트남어도 할 줄 몰랐고, 사소한 인허가를 받으러 어느 관공서를 찾아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현재는 연간 4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회사를 키웠다. 그가 만드는 셔츠와 바지 등은 미국과 유럽 등지로 수출된다. 이 지역 공산당 서기장과 선전국장 등 베트남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수시로 그에게서 경제자문을 얻는다.

그가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관리들뿐만 아니라 일반 베트남 국민의 인심을 얻으려고 항상 노력한다"는 것. 그가 이런 깨달음을 얻은 데에는 계기가 있었다.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안돼 옆집에 살던 호주 사업가 서너 명이 국외로 추방당하는 일을 목격했다.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베트남 관공서에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고, 여성을 불러 집에서 파티를 열다 적발돼 추방됐다고 한다.

그 후 박 사장은 베트남 관리들과 사소한 일도 상의하고 한국 정세에 대한 얘기도 해줬다. 그 결과 베트남 관리들은 박 사장에게 현지의 법과 규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등 친분을 다졌고, 이는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베트남전 최대 격전지였던 이 지역에 공장을 세우다 보니 친척이 한국군에 희생됐다고 말하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며 "이들을 위해 지난해에는 직원들과 함께 135명이 희생됐다고 알려진 하미쭝 마을에 찾아가 벽이 벗겨진 중학교에 페인트칠을 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베트남이 후진국이지만 곧 9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수준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낭(베트남)=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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