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아시시의 재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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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지방 아시시는 가톨릭 성인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의 산프란체스코교회는 1228년 프란체스코의 시성 (諡聖) 을 기념해 착공, 25년만에 완성됐다.

산프란체스코교회는 지하에 프란체스코 묘가 자리잡고 있으며, 교회당 내부에 르네상스 초기 거장 (巨匠) 들인 치마부에.지오토 등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들이 가득하다.

아시시는 이탈리아에서 네번째로 관광객이 많은 도시로, 시 재정의 80%가 관광수입에서 나온다.

프란체스코는 부유한 의류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전쟁에 나가 포로로 잡혔다 중병에 걸려 풀려났다.

병에서 회복된 후 다시 입대하려 했으나 꿈속에서 아시시로 돌아가 새로운 소명 (召命) 을 기다리라는 계시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기도에 전념했다. 어느날 아시시 성문 밖 폐허가 된 산다미아노 예배당에 들어갔다가 제단 위 십자가에서 "폐허가 된 내 집을 다시 세우라" 는 목소리를 듣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 가게에 있던 모든 옷을 들고 나와 돈으로 바꿔 산다미아노 예배당에 기부하고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프란체스코는 모든 물질을 포기한 극도의 청빈 (淸貧) 을 생활목표로 삼았다.

프란체스코는 평신도로서 마을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고,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드디어 프란체스코수도회가 창설됐다.

프란체스코는 자연을 하느님을 비추는 거울이자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생각했다.

그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불렀다.

형제 해와 누이 달, 심지어 자기를 괴롭히는 질병까지 누이라 불렀다.

그리스도가 대신해서 죽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26일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이 아시시를 강타했다.

산프란체스코교회는 큰 피해를 보았고, 특히 프레스코 벽화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당했다.

이 와중에 좀도둑들이 몰려 흩어진 벽화 조각들을 훔쳐내 한 조각에 우리 돈으로 30만원에 팔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지 언론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장벽 콘크리트 조각이 나도는 것과 같은 양상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돈 몇푼에 팔려 문화재를 못 쓰게 만드는 이같은 행위는 반달리즘 (vandalism) 일 뿐만 아니라 청빈을 생활신조로 삼았던 프란체스코의 정신에서 볼 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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