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로벌포커스]권력구조보다 국민행복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신한국당 새 총재 이회창 (李會昌) 후보가 국민대통합과 법치주의.국가혁신 등의 구호를 내세워 인기만회에 나섰다.

당강령에서 대통령중심제의 삭제를 한때 검토했던 李후보가 권력구조문제를 잠재웠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래서 권력구조문제가 대선쟁점에서 비켜갈 것같지 않다.

국민회의 김대중 (金大中) 후보와 자민련 김종필 (金鍾泌) 후보간 후보단일화협상은 내각제도입이 성패의 관건이며 이인제 (李仁濟) 후보도 책임총리제 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여론은 대체로 대통령제의 손질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현 대통령제가 6월항쟁의 민주주의 여망을 담은 국민합의에서 나왔으므로 쟁점화 자체가 때이르다.

특히 내각제를 내세워 DJ와 협상하고, 신한국당에도 추파를 던지는 JP의 2중플레이가 권력구조논쟁의 실상이다.

지지도 최하위인 JP의 내각제카드는 권력분점을 겨냥한 전술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되는 이유는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제왕적 (帝王的) 통치에서 병폐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느 선진국도 권력구조변화를 선거쟁점으로 삼지 않는다.

헌법을 바꾸는 일은 정치혼란을 자초하는 일이며 국가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정치지도자의 인식 때문이다.

건국후 대통령제를 지켜온 미국, 수세기동안 내각제를 고수한 영국이나 2차 세계대전후 내각제를 도입한 독일, 58년 대통령제를 도입한후 40년간 운용한 프랑스 등은 권력구조문제로 결코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6월항쟁후 10년도 안돼 권력구조문제로 야단법석이다.

정치권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로 양분돼 있지만 프랑스식 준대통령제 (이원집정제) 도입 주장도 적지 않다.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내각제를 가미해 쌍두권력 (pouvoir bicephal) 을 만들기 때문에 준대통령제라 부른다.

그러나 쌍두권력은 대통령출신 정당이 하원선거에서 패배했을 때만 등장한다.

86년 총선에서 사회당출신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드골파 당수 자크 시라크를 총리에 임명했다.

우파연합이 총선에서 의회 과반수 (2백89석) 보다 2석을 더 얻어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좌우동거정부 (cohabitation) 의 시발점이었다.

미테랑은 국회를 해산하거나 우파당선자 3명을 영입해 다수우파를 허무는 간사한 술수를 쓰지 않고 총선민의를 존중해 동거정부를 구성했다.

프랑스헌법에 동거정부를 구성하라는 규정은 없다.

헌법학자 조르주 베델은 " (동거정부에 대한) 규정은 없고 정치적 상황과 유권자의 선택이 명령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한다.

대통령은 내각총사직때 (총리의) 기능을 끝낸다" 는 것이 대통령과 총리간 관계를 규정한 헌법 제8조의 내용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총리가 자진사임하지 않으면 해임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미테랑은 93년 총선에서 패배해 발라뒤르 총리의 우파정부와 다시 동거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6월총선에서 패배해 현재 좌파연합과 동거중이다.

프랑스대통령제는 동거정부때에 한정해 내각제로 운영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대통령제가 되는 제도다.

프랑스식 준대통령제는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국정 (國政) 을 총리와 내각이 전담한다.

미테랑은 헌법을 '드골의 옷' 이라고 비난했으나 집권 14년간 동거정부라는 '쓴 약' 까지 마시면서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았다.

권력구조변경은 정치불안정을 초래해 경제사회 안정까지 해치기 때문에 미테랑은 '드골의 옷' 을 끝까지 입었다.

우리 대통령제도 준대통령제로 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다.

여소야대의 경우 대통령이 야당내각을 구성하면 된다.

그리고 총리와 내각에 일정한 임기를 보장해 책임을 지우면 제왕대통령의 비난을 면할 수 있다.

그래서 권력구조문제는 대선쟁점으로 적합하지 않으며 국민의 주관심사도 아니다.

이제 대선후보들은 권력구조변경의 유혹에서 벗어나 생산적 정책대결에 나서야 한다.

내각제로 바꾼다고 해서 부패정치.경제위기.과외망국병.사회무질서 등을 치료할 수 없다.

권력구조문제는 프랑스처럼 정치가 운영의 묘 (妙) 를 잘 살리면 해결될 수 있다.

그래서 대선후보들은 권력구조보다는 국민에게 행복을 고루 안겨주는 정책제시를 통해 국민의 인기를 모으는 건강한 대선운동을 펴기 바란다.

주섭일 국제문제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