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학연·지연에 휘둘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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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법개혁위원회가 일반 시민의 재판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검토 중인 배심제.참심제가 우리 현실에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배심제의 경우 배심원들이 사실에 입각한 법률적 판단을 소홀히 한 채 여론, 자신의 가치관, 혈연.학연.지연 등에 좌우돼 평결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배심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유.무죄에 대한 평결을 내리면, 직업 법관이 평결 결과에 따라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배심원 후보는 선거인 명부 등을 기초로 해당 법원에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한다. 피고인이 법관에 의한 재판과 배심원 재판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홍기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은 "우리 사회에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데다 각종 연고(緣故)가 재판 과정에 개입될 수 있어 배심제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정상진 변호사도 "피고인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평결을 끌어내고자 배심원들에게 '줄'을 대려는 행태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심제의 실질적 효과도 의문시된다. 미국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배심원들은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심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하지만 심슨 부인의 가족이 심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사건에선 심슨이 패했다. 민사사건에선 살인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법원의 판단이 달라져 국민적 혼란만 부추긴 셈이다.

또 미국에서 피고인이 배심재판을 선택한 경우가 4%도 채 안 된다. 봉욱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은 "배심제는 비용과 소요인력이 너무 많이 들어 나머지 사건들이 부실하게 심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참심제는 일반 시민이 직업 법관과 동등한 권한을 갖고 유.무죄 및 형량을 결정하는 제도로, 주로 유럽에서 실시되고 있다.

참심제는 참심원들이 법관이 판결을 내리는 데 '들러리'로 설 공산이 큰 데다, 일부 참심원의 권한 남용이 우려되는 게 단점이다.대한변협 김갑배 법제 이사는 "참심제를 채택하는 나라들의 경우 참심원 숫자가 너무 적어 국민의 사법 참여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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