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공론화로 정면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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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21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형수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난 17일 밤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진실과 거짓'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신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시작된 직후였다. 박 대표는 "나라를 위한 일들을 깊이있는 고민 없이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결정하는 우를 범한다면 후세에 큰 빚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박 대표가 21일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해 "졸속 처리했다"고 시인한 건 이 같은 고민의 결과다. 박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특별법안 처리 과정에 대해 박 대표는 사과한다는 입장을 진작에 정했다"면서 "다만 더 큰 고민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당이 향후 어떤 입장을 정하느냐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박 대표는 "사과는 백번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어떻게 책임지느냐"라며 "이것에 대해 그동안 많이 고민해 왔다"고 토로했다.

한나라당 내에선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불거지자 '제2의 탄핵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재오 의원 등은 "국민투표를 관철시켰다가 통과되면 행정수도 이전의 제반 책임을 한나라당이 지게 된다"며 "거꾸로 부결돼도 충청권의 비난을 우리가 뒤집어쓰게 된다"고 우려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로 공을 넘긴 데는 이런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했다.

박 대표가 당 안팎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신중론을 견지한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은 더 이상의 침묵을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박 대표가 이날 특별법안 처리 과정에 국한해 잘못을 시인한 것은 당 안팎의 한나라당 책임론에 대한 매듭을 짓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박 대표의 사과는 행정수도 이전 논란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인 셈이다. 박 대표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이날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백가쟁명식 토론이 벌어졌다. 5시간30분에 걸쳐 발언한 의원들만 27명이나 됐다.

"국회 내에 초당적인 특위를 설치해 공론화 과정을 밟자"(맹형규.임태희), "반대 당론을 정하고 천만인 서명운동을 하자"(김문수)는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홍문표(충남 예산)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을 한번 믿고 찬성하자"고까지 했다. 국민투표에 대해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이방호.심재철 의원 등은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한 반면, 박형준.김충환 의원 등은 반대를 주장했다.

논란 끝에 박 대표는 "오늘은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도 "지금은 특별법 폐지와 국민투표 등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며 "공론화의 불이 안 꺼지게 계속 토론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했다. 한나라당은 23일 의원총회에서 이 문제를 재론하기로 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은 즉각 "무책임한 행동"(김현미 대변인)이라고 비난했다. 이미경 의원은 상임중앙위원회에서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일 때 통과시킨 법을 미안하게 됐다고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데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명숙 의원은 "당과 정부는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과거 잘못을 사과하는 대신 공론화로 재무장한 한나라당과, 강행 불사를 고수하는 열린우리당 간의 행정수도 논란은 이제부터가 진검승부가 될 것 같다.

박승희.김선하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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