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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파라칠나마을 '오페라 인 아웃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오페라를 보러 호주에 간다? 그것도 시드니의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가 아니라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우선은 안셋 항공기로 서울에서 시드니까지 열 시간. 거기서 인구 1백만명의 남부지역 축제도시 애들레이드까지 다시 한 시간 반. 하지만 갈길은 이제 시작일 뿐. 애들레이드에서 12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내륙으로 날아간다.

여기는 인구 1만5천명의 소도시 포트 오거스타다.

벌써 지칠 것 같지만 힘을 내시라. 대서양.태평양.남극대륙을 가로질러 온 이들에 대면 별것 아니다.

이탈리아.브라질에서 시드니까지만 스무 시간 넘게 비행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 다시 자동차 - .지평선을 향해 끝간 데 없이 뻗은 도로를 달린다.

사람의 흔적은 차츰 드물어 간다.

쿠오른 읍에서 하룻밤. 차는 호커 마을을 거쳐 마침내 상주인구 일곱명의 파라칠나에서 멈춰선다.

여기다.

애들레이드에서 약 5백㎞ 떨어진 호주 내륙의 국립공원 플린더스산맥 한 기슭에 온전히 다다른 것이다.

'산맥' 이라고 해도 우리네 백두대간 산세와는 거리가 멀다.

완만한 구릉을 크기만 부풀려 놓은 듯, 구릉과 구릉 사이는 광활한 평원이다.

마치 사막에 가깝다.

가도가도 이름을 모를 풀과 틈틈이 보이는 관목이 눈에 띄는 생명의 전부. 잡풀?

그랬다간 큰일난다.

아주 오래전 유라시아대륙에서 떨어져 나가 호주대륙만이 간직하게 된 이 낯선 식물들이야말로 사막의 우물, 아니 오지 (奧地) 의 보물이다.

사람의 흔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백인들이 오기 전, 최소 4만년동안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이들이 남긴 동굴벽화와 지난 세기 백인 개척자들이 살던 집터가 이따금씩 갈길을 멈추게 한다.

관목숲 우거진 구릉을 오르다가 운이 좋으면, 저만치서 '왈라비' 라고 불리는 작은 캥거루 무리와 마주칠 수도 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방인을 멀뚱히 바라보는 이네들은 아마 입장권없이도 오페라를 즐길 수 있을 터. 텅빈 파라칠나 마을은 며칠 사이 수백 가구의 거주지로 바뀐다.

이른바 텐트촌. 샤워장과 화장실은 초대형 트레일러에 실려와 자리를 잡지만 하루에도 네댓번 바뀌는 날씨에 맞출 반팔 셔츠와 선글라스, 두툼한 스웨터와 방수 재킷은 제각각 챙겨야 할 몫이다.

이 '머나먼 오페라' 의 길 동행자는 모두 7천명. 그들은 양털깎기, 양치기 개의 거위몰이, 입담꾼들의 말자랑 등으로, 마치 시골장터 같은 분위기에 휩쓸린다.

다들 열을 내는 경마 말고도 광산 (鑛山)에 투입하는 키작은 개량종 말이나 낙타를 타는 재미도 간단치가 않다.

그러다가 밤에는 장소를 바꿔가며 음악회가 열린다.

첫날은 호주의 컨트리가수 리 커나건, 다음날은 역시 호주의 대표적인 4인조 재즈팀과 재즈가수 그레이스 나이트, 하는 식이다.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뉴질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가 나오는 21일의 오페라 무대다.

여기서도 정장.하이힐은 쓸모가 없다.

해질 무렵부터 플린더스산맥의 계곡 알카리나에 줄을 서기 시작한 사람들은 차림새는 아이들에서 노인까지 모두 자유롭다.

설령 나비넥타이로 멋을 냈다손 치더라도 투박한 부츠는 피할 길 없다.

애들레이드 심포니 오케스트라보다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이 땅의 본래 주인, 즉 검은색 피부의 애드니마타나족 (族) 원주민 여성들이다.

이들 20여명은 토속어로 자장가를 부르고, 공연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곡을 키리 테 카나와와 협연한다.

키리 테 카나와 역시 푸치니 오페라의 아리아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곡을 나란히 부른다.

가까운 바로사계곡과 클레어계곡에서 숙성한 와인으로 이미 목을 축인 관객들은 자연스레 노래에 답한다.

해가 지고, 남십자성이 뜨고, 서울에서 가져간 오리털 파카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바람이 차다.

호주 파라칠나 =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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