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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장면은 외로움 표현하는 수단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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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2일 개봉하는 ‘숏버스’는 노출된 성기 등을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이 직접 모자이크 처리한 ‘아시아 버전’이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 그는 영화 속 그룹섹스 장면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오른쪽은 영화의 한 장면. [게티이미지/멀티비츠이미지]

논란의 영화 ‘숏버스(Shortbus)’가 12일 개봉한다. 2006년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작이었던 ‘숏버스’는 게이 섹스·그룹 섹스·오럴 섹스 등 갖가지 성교 장면과 성기 노출, 배우들의 실제 성행위 등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그 후 수입사와 영등위의 긴 법정공방 끝에 결국 2년여 만인 지난달 18세 이상 관람가로 재판정을 받았다. 감독 존 캐머런 미첼(46)은 성전환 록가수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린 뮤지컬과 영화 ‘헤드윅’의 주연 겸 연출로 2001년 선댄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은 인물. 그 자신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그와 7일 오전(한국시간) 40분에 걸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숏버스’의 한국 개봉을 축하한다. ‘숏버스’를 음란물로 보는 시선에 대한 생각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포르노 영화라고 말한다면 성의식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성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웃음). 포르노는 보는 사람을 흥분시켜 돈을 벌기 위한 목적밖에 없다. 내가 ‘숏버스’로 돈을 벌고 싶었다면 오히려 성교 장면을 많이 뺐을 것이다. 나에게 ‘숏버스’에서 섹스는 수단이자 영화적 언어일 뿐이다. 섹스 없는 ‘숏버스’는 노래 없는 ‘헤드윅’과 같다. 다양한 성관계를 갖는 인간군상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타인과 이토록 소통하길 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보기 전보다 덜 외로웠으면 하는 게 내 유일한 바람이다.”

-배우들에게 왜 진짜 성행위를 주문했는지.

“실제로 성행위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연기다. 배우가 우는 연기를 할 때 배우는 실제로 울지만, 그것을 연기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다. 반대로, 일상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평소 섹스할 때 누구나 조금씩 연기를 하지 않는가(웃음).”


-소피아 역의 숙인 리(중국계 캐나다인)는 이 영화로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다.

“그는 CBS 라디오 진행자였는데 이 영화가 문제가 돼 프로에서 잘릴 위기에 처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구스 반 산트 감독 등 동료들이 탄원 운동을 벌여 위기를 넘겼다. 영화를 찍기 전 그는 성과 노출 연기를 몹시 두려워했다. 나도 성에 대해 폐쇄적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보수적이고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헤드윅’이나 ‘숏버스’는 만들지 않았을지 모른다(웃음). 성을 너무 금기시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룹섹스 장면에 엑스트라로 직접 출연도 했는데.

“그룹섹스 취미가 없어서 긴장했다. 영화를 보고 (동성애자인 아들도 이성애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점에서) 우리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다(웃음).”

기선민 기자

◆‘숏버스’=신체적·정신적 결함을 가진 소수자를 뜻하는 은어다. 영화 속에서는 이들이 모이는 언더그라운드 바의 이름이기도 하다. 남의 섹스 문제를 상담해 주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남편과의 관계에서 한 번도 절정을 느껴보지 못한 소피아,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신과 애인 제이미의 삶을 비디오로 찍어 완성한 후 자살하려고 하는 제임스, 낯선 이들과 무의미한 관계를 맺은 후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취미를 지닌 창녀 세브린 등이 이곳을 드나든다. 이들은 자유롭고 다양한 성적 시도를 통해 서로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외로움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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