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진국 중국에 놓인 복병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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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러나 일찍 찾아온 중진국은 중국에 새로운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 한 사회의 근대화는 정치적 근대화와 무관하지 않고, 경제 발전의 기대감은 정치적 제도화를 요구하는 게 보편적인 역사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에서도 공산당의 권위가 세속화되기 시작했고, 밑으로부터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일부 학자와 당료들은 경쟁적 정당 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비판적 지식인들과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늘고 있다. 여기에 도시와 농촌의 차이, 지역 간 차이, 소득 차이 등 이른바 격차(格差)사회가 구조화되고 있다. 불평등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니(Gini)계수는 이미 0.495에 달해 위험 직전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집단시위가 12만 건을 넘어섰다는 통계는 중국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해 주고 있다. 중국은 이제 2050년엔 선진국, 2020년에는 ‘먹고살 뿐 아니라 생활에 여유가 있는’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를 실현한다는 장기 목표와는 별도로 ‘중진국 증후군’을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물론 이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해 말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아 현재의 위기를 소련의 붕괴와 1989년의 천안문 사태에 필적하는 국면으로 진단했다. 기존 성장주의 전략을 버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과학발전관’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제시했다. 특히 관료화된 당·국가 체제를 바꾸기 위해 당내 민주주의를 도입하면서 정책 결정의 투명성과 권력 계승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 비록 증량주의(incrementalism)를 택하고 있지만 ‘민주는 좋은 것(Democracy is good thing)’이라며 정치적 개방을 시사했고, 공무원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사회적 불만을 돌리기 위한 미봉적 수준이 아니라 부패가 시장경제를 마비시키고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경제 위기가 가져온 불확실성은 중국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제약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 문제는 더 이상 국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발 빠른 계산은 문제를 보다 복잡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병목현상을 출현시키고 있다. 이는 공산당의 통제력 회복이나 중화주의와 애국주의의 마법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 발전과 정치 발전의 보폭을 맞추는 이른바 ‘성공의 역설’을 넘어서야 하는 역사적 과제에 해당한다. 벌써 채비를 시작한 2012년의 중국공산당 18차 대회는 중진국 중국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부상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온 결과였다. 중국이 중진국 문턱에 놓인 복병을 제거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면 중국 모델의 적실성을 세계에 입증하면서 그토록 염원하던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위한 거대한 발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력 전이(power shift)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는 미 국가정보위원회의 평가도 이런 가능성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급변은 한국에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닌, 대담한 상상력과 전략적 지혜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정외과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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