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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화의신청 기업운명은 협력사 협조에 달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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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화의 (和議) 신청을 통해 비상탈출을 모색하는 부실기업들이 늘고 있다.

올들어 화의를 신청한 곳은 기아그룹외에도 진로그룹.한주통산.㈜동신등이 있다.

이들 기업중 진로그룹 8개 계열사는 이미 재산보전처분 결정을 받았고 건설업체인 ㈜동신은 화의결정까지 받아내 일단 한숨 돌린 상태다.

특히 지난 8월17일 부도를 냈던 의류업체 한주통산은 같은달 22일 법정관리 신청을 냈다가 지난 6일 화의신청으로 재기절차를 바꿔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화의신청 기업 대부분이 채권단의 추가지원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데다 납품대금이 묶이게 될 협력업체들의 반발에 부닥치는등 정상화 여부를 속단하기엔 이른 편이다.

㈜동신에 타일을 납품하고 있는 O타일㈜는 "부도 이전인 지난해 12월부터 납품한 대금을 아직도 못받고 있다" 며 "화의조건으로 올해말까지 밀린 대금을 받기로 했지만 당장 운전자금이 달려 납품도 힘겨운 형편" 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부실기업들이 화의신청을 하는 것은 법원의 채산보전처분으로 부채가 동결될 경우 이자부담을 덜 수 있고, 화의개시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4~5개월동안 자력갱생의 길을 모색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간중 홀로서기에 실패하면 법원에서 화의결정을 받아내기가 어려워진다.

◇ 화의신청 진행상황 = 진로는 부도유예협약 만료직후인 지난 7일 ㈜진로.쿠어스맥주.유통등 주력 6개사에 대해 화의를 신청, 12~18일 사이 법원으로부터 재산보전처분 결정을 받았다.

이어 지난 22일 케이블방송 G - TV와 진로베스토아에 대한 화의신청을 추가로 냈다.

진로는 화의개시 결정 여부가 판가름나는 내년 1월초까지 부동산 매각이 원활히 이뤄지면 채무부담이 크게 줄어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신은 화의신청이 받아들여져 일단 회생의 발판은 마련한 상태. 한주통산의 경우는 화의결정이 아직 불투명하다.

이번주안으로 재산보전처분을 받는 것이 급선무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협력업체들과 납품대금 결제방식 관련 합의서를 작성하는등 법원의 화의결정 분위기 조성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 경영상태 어떻게 달라졌나 = ㈜동신은 지난 7월 채권단과의 화의 조건에 합의해 "이제는 경영정상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고 판단하고 있다.

이 회사 자금담당 이연규 (李練奎) 상무는 "화의개시 결정후 아파트분양 중도금이 순조롭게 들어오고 이달 서울 공릉동 아파트 (4백50세가구)가 모두 분양돼 자금에 숨통이 트였다" 고 말했다.

또 아파트 건립을 위해 수원 정자동과 김해 장유지구에 마련해뒀던 택지를 연말까지 매각하고, 임직원을 감축하는등 자구계획도 강도높게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진로그룹도 채무동결로 월 2백억원 정도의 이자부담이 줄어 협력업체의 원자재 납품대금을 일부 현찰로 지급할 정도로 사정이 나아졌다.

화의개시 결정이 이뤄진뒤 ㈜진로와 쿠어스맥주의 경영에 부담이 될 경우 다른 계열사들은 제3자매각이나 법정관리를 통해 정리한다는 내부방침도 마련했다.

한주통산은 부도후 어음발행이 중단돼 대리점들로부터 물품대금을 현금으로 받아 운영자금으로 활용하는등 자금사정은 여의치 않은 편이다.

이에따라 서울 신사동 사옥 (8층건물) 및 다동빌딩 매각, 적자를 보는 의류브랜드 정리등의 자구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 협력업체의 문제점 = 화의는 부실화한 기업이 법원의 중재감독 아래 채권단과 협정을 맺고 채무상환 기일과 방법을 정해 파산을 모면토록 하는 제도지만 협력업체 보호장치는 따로 없다.

회의가 개시될 경우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협력업체들은 납품대금이 묶여 경영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문에 화의제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우경제연구소의 박춘호 (朴春鎬) 연구원은 "부실기업들이 당장의 경영권 유지에 급급해 화의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어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고 지적했다.

고윤희.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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