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짚기]한국적이면 세계적인가 … 이젠 문화적 콤플렉스 벗어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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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얼마전 한국축구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비쇼베츠가 신문에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축구에서 기본기가 모자라면 기본기를 연마하고 체력이 뒤지면 체력을 길러야지 이를 '한국적 축구' 운운하며 정신력 등으로 커버한다면 축구 선진국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감한다.

지난 70년대초, 군부독재가 우리들이 존경하던 지성들을 타락시켜 '한국적 민주주의' 라는 허구의 논리를 만들게 하고 이를 우리에게 무력으로 되뇌이게 한 적이 있다.

그들의 강압통치의 논리적 바탕이 된 이 '한국적 민주주의' 는 그 시대의 건축 형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 당시 지어진 많은 '시대적 건축' - 역사 속에서 독재자들에게는 그들의 정통성을 강변하기 위한 거대 건축물의 건립은 항상 중요하고도 효과적 수단이었다 - 은 당연히도 '한국적 건축' 이 되어야 했으며 전통건축을 그 모델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건축이란 목조 구조의 형식이어서 이를 제대로 재현하기에는 그들이 짓고자 하는 건물의 공사기간이나 스케일 등이 이의 사용을 허용치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콘크리트로 목조의 흉내를 내고 그 위에 기와를 씌우고 단청을 칠하여 목조인 양 위장하는 일에 익숙하게 된다.

이 우스꽝스럽고 조작된 건축의 예가 광화문의 복원이요 각종 국립박물관의 건립이었으며 전통사찰들의 중창 등인데, 이들 대부분은 불과 20년이 지나면서 각종 문제를 들어내며 다시 짓거나 쓰지 못하게 되었다.

누구인가 이를 가리켜 '박조건축 (朴朝建築)' 이라 하였던가.

물질의 풍요가 그때보다 나아지고 정치의 민주화도 훨씬 진행되어 있는 지금은 콘크리트에 의한 '한국적 건축' 은 사라진 대신, 없어진 고건축을 전통적 방식에 따라 복원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경희궁을 복원하고 조선총독부를 허물면서 경복궁을 다시 짓고 있으며, 남산에다 한옥촌을 조성하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백제촌도 짓고 신라촌도 짓는다고 한다.

하기야 대부분의 전통건축이 각종 전란으로 소실되어 반만년의 기나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내세우고 보여줄 것이 그다지 없는 우리이기에 그런 복원이 중요하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복원이라는 미명으로 자초하는 참역사의 소실과 그 오도가 심각하다는 데에 있다.

파르테논을 아테네인들이 돈이 없어 그 폐허의 모습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며 콜로세움을 다시 복원할 여유와 기술이 없는 로마인들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들은 이 복원이 오히려 역사의 사실에 대한 파괴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는 터이며, 그 폐허의 모습이 오히려 그들의 불멸의 문화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함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폐허나 쇠락한 흔적도 그 자체가 중요한 역사이며 그 원형에의 자유로운 상상과 연구가 참으로 중요한 문화활동이다.

더구나 복원하는 건축의 시점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장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건축을 그 장소를 바꾸어가면서 복원하는 것은 그 건축의 생명을 정지시키고 박제시키는 것과 다름아니다.

이것은 복원이 아니라 파괴이며 한갓 쇼비니즘일 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호의 하나인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 이라는 말은 비쇼베츠의 논리를 빌리면 문화적 콤플렉스이다.

문화가 보편성의 가치를 외면한 채 지역과 토속의 틀안에 머물러 있으면 결코 세계적인 될 수 없음이다.

이러한 옹졸한 쇼비니즘과 '박조문화 (朴朝文化)' 의 잔재를 이제는 넘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건축가.이로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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