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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듀오 국내 첫 '합창'…백건우·세르미트 공연 28일 예술의 전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리스트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듀오곡으로 편곡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 이 국내 초연된다.

오는 28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중앙일보와 예술의전당 공동주최로 서울공연을 갖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白建宇.51) 씨가 터키의 피아니스트 후세인 세르미트 (42) 와 함께 '합창' 을 스무개의 손가락으로 들려준다.

02 - 580 - 1234. 혼성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 은 해마다 연말이면 각 교향악단들이 앞다퉈 연주하는 레퍼토리. 국내에서도 자주 연주돼 왔지만 피아노 편곡이 무대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편곡은 오리지널 작품에 비해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해 있는데다 일반적으로 리스트의 편곡이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기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의 작품까지 피아노로 즐겨 편곡했던 프란츠 리스트. 그가 음악의 '거대한 피라미드' '판테온 (萬神殿)' 이라고 극찬했던 작품이 바로 '합창교향곡' 이었다.

25년의 세월을 바쳐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을 모두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리스트이지만 '합창교향곡' 만은 방대한 악상을 열손가락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교향곡만은 별도로 1851년에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추가로 편곡하기에 이른 것이다.

리스트는 피아노의 7옥타브가 관현악의 모든 악기와 음역을 커버할 수 있고 피아니스트의 열 손가락은 1백여명의 오케스트라가 내는 하모니를 충분히 재현해 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그는 대중적 취미에 영합하는 값싼 편곡이 난무하던 때에 베토벤 교향곡을 통해서 편곡의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베토벤도 자신의 교향곡 제7번의 피아노 편곡을 시도했을 정도로 피아노의 다채로운 음색과 가능성에 주목했다.

리스트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을 피아노 편곡으로 연주하자 베를리오즈는 리스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오케스트라다.

나는 합창단이며 지휘자다.

내 피아노는 피를 흘리고 천둥과 번개를 친다.

화살만큼이나 빠르다.

끝없는 리허설 때문에 지칠 필요도 없다.

나는 1백명의 연주자도, 악보도 필요없다고 말이다.

" 리스트는 그의 작품 '소나타 b단조' 의 음악적 구성에서 보듯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세기 최고의 베토벤 해석자' 로 손꼽히는 리스트는 생전에 빈 청중의 외면을 받았던 베토벤을 악성 (樂聖) 의 지위로 올려 놓은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1845년 독일 본에 제막된 베토벤의 동상도 리스트의 추모콘서트로 얻어진 기금 덕분에 가능했다.

리스트는 베토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음악가들에게 베토벤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인도해낸 불기둥과 구름기둥 같은 존재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낮이고 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 백건우씨가 '합창교향곡' 편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프랑스 음악평론가 자크 드리용의 추천때문이었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는 白씨의 탐구정신이 다시 한번 꿈틀거린 것이다.

오늘날 연주되는 '합창교향곡' 은 베토벤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음악외적인 면에 치우치고 있어 피아노 편곡이 오히려 음악적 정수 (精髓) 를 제대로 전달할 수도 있다.

이번 공연은 또 한번도 연주되지 않은 작품들이 얼마든지 많은데 언제나 뻔한 레퍼토리만을 고집하는 국내 연주자들에게는 따끔한 충고이기도 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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