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 경쟁력을 말한다 ⑨ ‘유비쿼터스 캠퍼스’ 추진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만난 사람 = 양영유 교육데스크

-‘유비쿼터스 캠퍼스’ 개념이 신선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마디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것이다. 틀에 박힌 생산라인인 수업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강의 질이 좋아지지 않는다. 숙대는 1999년 국내 최초로 교내 무선랜망을 구축했다. 랜카드와 노트북 컴퓨터 무료 대여 서비스를 하자 미국 언론이 보도까지 했다. 그래서 유비쿼터스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교수는 어떻게 가르치고 학생은 어떻게 공부하나.

“나는 매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위클리 어드레스(weekly address)’를 듣는다. 미국 국민과 똑같이 이번 주에 어떤 법안이 통과되는지를 한국 신문보다 더 빨리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활용하면 된다. 교수는 유·무료로 접속할 수 있는 세계 유명 강의 내용과 질을 따져본 뒤 강의에 활용하면 된다. 2학기부터 유명 강의를 갖고 주제 토론을 하며 글로벌 지식을 쌓도록 별도 강의도 만들 수 있다. 학생은 유학 간 것처럼 캠퍼스 어디에서나 무선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긍극적으로는 재학생 100%가 유학 생활을 하는 것 같은 캠퍼스를 만들겠다.”

-효과가 있을까. 학생들의 추가 비용 부담도 걱정된다.

“출퇴근 시간에 아이팟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과 ‘오프라 윈프리 쇼’를 들어보니 장난이 아니더라. 자꾸 듣고 지식을 쌓으면 어학 연수 갈 필요도 없다. 간다 해도 강의에 익숙해져 학습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학생 부담은 전혀 없다. 숙대가 처음 하는 일이다.”

-시·군·구에서 한 명씩 추천받아 뽑는 입학전형이 특이하다. 학생 실력을 장담할 수 있나.

“기초단체장과 고교를 믿는 것이다. 전국에서 좋은 학생을 한 명씩 보내주면 숙대는 대한민국 모든 지역 학생이 다니는 캠퍼스가 될 것이다. 글로벌화와 로컬라이제이션의 하모니다.”

-숙대는 ‘리더십 특성화’에 장점이 있다.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화여대와 비슷한 것 같다.

“(깜짝 놀라며) 우리가 ‘리더십개발원’을 처음 만들었다. 리더십 교육 원조는 숙대다. 명품 브랜드만이 카피(복사)된다. 다른 대학에도 그 가치가 전파되는 것은 우리가 명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 모델을 카피한 다른 대학에 감사한다(웃음).”

-그래도 리더십 얘기가 와닿지 않는다.

“리더십보다는 ‘파트너십’이다. 한 명의 리더를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모두 리더가 돼 상생으로 가자는 것이다. 파트너십 다음 단계는 ‘앙트레프레너십(entrepreneurship)’, 즉 ‘기업가 정신’이다. 내년부터 ‘글로벌 서비스 학부’를 만들어 신입생을 모집한다. 세계의 정치·경제·문화 등 포괄적 분야의 서비스 활동을 다룬다. 기업가 정신, 혁신적 사고, 창업과 조직관리 실습까지 아우르는 대학원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리더십’이 남을 끌고 가는 것이라면 ‘파트너십’은 같이 가는 것이고, ‘앙트레프레너십’은 같이 창조하는 것이다. 숙대를 나오면 사회에 가치가 생긴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기업에서 써보면 안다. 학생 배출을 상품과 비교해보면 더 쉽다. ‘생각하는 힘을 가진 창조적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 내가 키운 자식들이 나만 예쁜 게 아니라 남도 탐을 내야 한다. 솔직히 사람들은 젊은 총장이니까 굉장히 화려한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난 꽃 핀 화분을 사다 놓는 것보다는 퇴비와 거름을 주며 땅을 일구는 것을 택했다. 이번 학기부터 교양과목 개편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사고력을 기르는 과목을 신설했다. 숙명리더십개발원·의사소통센터·교수학습센터를 통합해 ‘숙명리더십인재개발원’으로 만들었다. 대화와 협상, 비판과 논술 등 10과목을 모든 학생이 필수로 공부해야 한다.”

-대학, 특히 교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이다. 학생을 이렇게 만들려면 생산자가 좋아야 한다. 진짜 살아남는 브랜드는 AS가 잘되는 브랜드다. 여태까지 대학들이 교수 역량 강화를 위해 도입했던 SCI급 논문 편수 기준은 교수들이 학생을 돌볼 여유가 없고, 돌보는 게 손해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구평가 대신 교육평가를 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강의는 기본이고 학생들을 지도하며 농사를 짓듯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졸업할 때 진로나 취업에 대해 신경을 써줬는지를 평가하는 ‘평생멘토시스템’이다. 교수 600명이 학부생 1만 명을 지도한다.”

-어떻게 평가할 생각인가.

“멘토 팩터와 상담 시간 등을 계량화해 지표를 관리하는 ‘평가감사실’을 만들어 가동 중이다. 학생과 얼마나 많이 스킨십을 했는지가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만약 내가 13명을 할당받았다면 논문 편수처럼 그 멘토링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숙대는 지난해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43명이 응시해 22명이 붙었다. 합격률이 51.2%로 서울대 다음이다. 교수가 아침에 깨워주는 등 스킨십을 보인 결과다. 멘토링 성과에도 인센티브를 줄 예정이다. 학생 만날 때 쓰는 밥값과 회의비는 학교가 대준다.”

-최초로 ‘학사 후 관리’ 과정인 5학년 코스를 시작했다. 재정 부담은 없었나.

“(웃으며) 원래 애프터서비스는 돈 받고 하는 게 아니다. 올해 2월 졸업생 1482명의 21%인 314명이 과정을 밟고 있다.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지만 영양사 취업에 실패한 학생들은 ‘식생활 관리 실습’ 등 부족한 분야를 수강할 수 있다. 맞춤형 강의도 있다. 취업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또 ‘리콜’해 서비스해 줄 것이다. 곳간 빈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한다. 다른 대학에 확산됐으면 좋겠다.”

-경제난으로 학생들이 걱정이다.

“불황에는 학생 복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올해 장학금을 지난해보다 48억원 증액했다. 전체 재학생의 59.3%에겐 장학금을 줄 계획이다. 총 규모는 232억원이다. 올해 예산의 14%에 해당한다. 등록금을 동결해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190억원 줄었다. 하지만 여대인 만큼 ‘1인 1라커’도 만들었다. 학생들은 옷을 갈아입고, 신발도 보관할 수 있다. 여름에는 파우더룸과 피트니스센터도 만들 계획이다.”

-경쟁력 지표 중 하나인 로스쿨이 탈락했다.

“안타깝다. 다음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학부를 법대로 키울 수도 있고 본부에서도 대비를 하고 있다.”

-대입자율화에 대한 입장이 뭔가.

“입시의 큰 틀은 유지하되 입학사정관 전형은 확대할 것이다. 넓은 의미의 입학사정관제가 실시되면 본고사는 의미가 없다. 공교육 정상화나 대학의 책무성은 매우 중요하다. 3불은 정서가 무르익고 사회적 합의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율화 시기를 정치적으로 연결시키고 싶지 않다.”

-한식 전문가로 스타 교수, 스타 총장이 됐다.

“(수줍어하며) 2000년부터 총장이 되기 전까지 전국에서 하나뿐인 ‘한국음식연구원’을 만들어 원장을 했다. 현재 농림수산식품부가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식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마케팅하는 데 우리 연구원이 들어가 있다. 미국 LA나 뉴욕 등에 ‘숙명문화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한국음식은 외국에 한국 문화 전파 진입 장벽을 뚫는 특공대 역할을 한다.”

-학생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모든 e-메일에 답을 한다. 하루 1시간만 투자해도 10통의 e-메일에 답할 수 있다. 어떤 학생은 e-메일로 주례를 부탁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엄마처럼 기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정리=이원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1957년 인천 출생.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독일 본(Bonn) 대학에서 박사 후 연수과정을 밟았다. 97년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2008년 9월 제17대 총장에 취임했다. APEC 정상회의 만찬 자문과 농림수산식품부 ‘KOREA FOOD EXPO 2008’ 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 전통음식의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KBS 프로그램 비타민의 ‘위대한 밥상’ 코너를 3년간 맡아 스타 교수가 됐다. 『위대한 밥상』 『음식이 보약이다』를 비롯한 17권의 책을 썼다. 휴강·결강을 한 번도 안 할 정도로 ‘악바리’ 근성이 강하다는 게 동료 교수들의 평이다. 수첩을 끼고 다니며 늘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별명이 ‘수첩공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