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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관계‘과부하’걸려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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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첫 외교 회담에서 본의 아닌 실수로 창피를 당했다. 회담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라브로프 장관에게 선물한 기념품에 양국 관계를 비꼬는 엉뚱한 러시아어 단어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左)이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클린턴 장관이 선물한 기념품을 살펴보고 있다. [제네바 AP=연합뉴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을 순방 중인 클린턴 장관은 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라브로프를 만났다. 다음 달 2일 영국 런던의 주요 20개국(G20) 금융 정상회의에서 이뤄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관계와 국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기념품에는 번역 실수로 양국 관계를 ‘재설정(Reset)’하자는 뜻의 러시아어 ‘Perezagruzka’ 대신 ‘과부하’란 의미의 ‘Peregruzka’가 인쇄돼 있다. [제네바 AP=연합뉴스]

클린턴은 회담에 앞서 라브로프에게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의 바람을 담은 것”이라며 작은 버튼 장치 모양의 기념품을 건넸다. 지난달 독일 뮌헨의 국제안보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Reset)하는 버튼을 누르자”고 제안한 데서 힌트를 얻어 만든 기념품이었다. ‘제2의 냉전’으로 불릴 만큼 악화된 미·러 관계를 개선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문제는 기념품에 영어 ‘Reset’과 함께 새겨진 러시아어 단어의 영어 알파벳 표기였다. ‘재설정’을 의미하는 ‘Perezagruzka’ 대신 ‘과부하’를 의미하는 비슷한 단어 ‘Peregruzka’가 인쇄돼 있었던 것이다. 라브로프가 실수를 지적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클린턴은 “우리 관계에 과부하가 걸리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농담으로 넘어갔다.

이런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두 장관은 회담 결과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클린턴은 “동유럽 미사일방어(MD)와 이란 핵 문제,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방안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며 “양국 관계가 새출발을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라브로프도 “오바마 정부가 러시아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화답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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