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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비정하게, 격투기 같은 남자들의 장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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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호 13면

살인은 게임이 아니다. 추리는 예술이 아니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있을 법한 얘기를 하자. 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이고, 말보다 빠른 게 권총이다. 비정한 얘기는 비정하게 쓰자. 이런 생각의 작가들이 내놓은 게 하드보일드다.

남윤호 기자의 추리소설을 쏘다-하드보일드의 효시 『피의 수확』

대실 해밋(1894~1961)의 『피의 수확』(1929)이 그 기원이다. 무법의 광산촌에서 벌어지는 유혈극을 다룬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면면이 화려하게 어둡다. 부패한 경찰, 암흑가의 보스, 사기도박꾼, 밀주업자, 건달, 창부…. 이들이 얽히고설켜 죽이고 죽는다. 콘티넨털 탐정사에서 파견된 주인공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비열한 거리를 배회하는 한 마리 늑대다. 고독하고 비정하다. 그러나 그 비정함이 현실적이다. 그래서 힘이 있다. 남성적이다.

명탐정이 주름잡던 고전 추리소설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우선 글의 긴장감과 속도감이 천양지차다. 고전 추리소설이 발레라면 하드보일드는 격투기다. 군더더기 없이 전할 것만 간결하게 전한다. 또 1인칭 시점이 많다. 해밋에 이어 레이먼드 챈들러나 로스 맥도널드도 1인칭을 고집했다. 탐정과 독자의 시선을 일치시켜 제3자의 불필요한 개입을 차단했다.

탐정의 캐릭터도 영 딴판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다. 챈들러가 창조한 필립 말로는 말한다. “머리가 필요한 일이라면 나를 불러도 헛일일 거요.”(『안녕 내 사랑』) 또 『피의 수확』의 주인공은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배 나온 중년 고집쟁이’로 묘사된다. 그는 이름도 없다. 가짜 명함을 뿌리며 끝까지 본명을 감춘다. 탐정은 사건의 한 부품일 뿐 따로 브랜드가 필요 없다는 뜻일까.

하드보일드는 액션 위주의 폭력파와 감상적 분위기의 서정파로 나뉜다. 전자는 해밋, 후자는 챈들러가 정점에 서 있다. 둘의 첫 장편소설은 그처럼 대조적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시체가 쌓여 가는 『피의 수확』은 퇴역 장군의 분방한 딸에게 얽힌 협박 사건을 다룬 챈들러의 『빅 슬립』과 확실히 구별된다.

원래 하드보일드는 ‘푹 삶은 달걀(hard-boiled egg)’이란 뜻이다. 이게 19세기 속어로는 구두쇠, 또는 도박판에서 ‘먹튀’ 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20세기 초엔 ‘냉혹한’ ‘비정한’ ‘만만찮은’ ‘닳고 닳은’ ‘거만한’ ‘가차없는’ 등의 뜻으로 쓰였다. ‘하드보일드 베이비’란 말도 있었다. 행실이 나쁜 여자를 말한다. 이게 강도의 은어로는 ‘열기 어려운 단단한 금고’였다 한다.

이렇게 변용된 말을 문학용어로 처음 쓴 사람은 작가 허버트 애즈베리다. 1929년 『피의 수확』의 서평에서 “생생한 하드보일드 표현을 썼다”고 했다. 리얼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라는 의미다. 또 41년 평론가 하워드 헤이크래프트는 『모르그가의 살인』100주년을 맞아 하드보일드를 독립 장르로 선언했다.

하드보일드는 주류문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대표적이다. 그의 단편 『킬러』는 이 분야의 고전이다. 하기야 그의 삶 자체가 하드보일드하지 않았나.


추리소설에 재미 붙인 지 꽤 됐다. 매니어는 아니다. 초보자들에게 그 맛을 보이려는 초보자다. 중앙일보 금융증권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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