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가야 金銅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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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낙동강 하류에 산재하는 수천 기의 가야 고분 (古墳) 들이 일본인 호리꾼과 배후의 조종자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도굴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日帝)에 나라를 빼앗긴지 5년쯤 지난 1914년부터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야 총독부는 이마니시 류 (今西龍) 고적조사위원을 현지에 보내 진상을 조사토록 했다.

후에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이마니시는 그 처참한 도굴현장을 목격하고 그 충격을 낱낱이 보고서에 기록했다.

보고서에서 이마니시는 상당수의 가야고분들이 파헤쳐져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은 접근조차 하지 않는 '순박함' 을 보이는데 비해 일본인들은 옛사람들의 분묘를 예사로 '능욕' 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는 또 일본인이 운영하는 서울의 한 골동가게에서 가야문화의 귀중한 유물들이 일본인에게 팔려나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고 쓰기도 했다.

보고서의 도굴 유물 목록에는 순금귀고리.곡옥 (曲玉) 과 관옥 (管玉) 등 옥류 (玉類).무기류.마형대구 (馬形帶鉤) 따위가 포함돼 있으나 관류 (冠類) 는 들어 있지 않았다.

높은 값으로 밀매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일은 총독부가 이마니시의 조사보고서를 검토하고 난 후 아직 도굴꾼들의 손이 닿지 않은 창녕 일대의 가야 고분 약 1백기를 서둘러 발굴했다는 점이다.

이때 출토된 부장품만도 마차 20대, 화차 2칸 분량이었다고 기록돼 있으니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된 가야 유물이 어느 정도였을까 짐작이 갈만 하다.

학계에서는 구한말 이후 일본에 빼앗겼거나 그밖의 외국에 흘러들어간 우리 문화유산이 최소한 10만 점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가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유물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이다.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만 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령 지산동 제32호분 출토품과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구 비산동 제37호분 출토품등 불과 몇몇을 손꼽을 정도다.

최근 한 재일동포 컬렉터가 공개한 경남 양산 가야고분 출토의 금동관중에도 국내에서는 출토된 적이 없는 '왕관형' 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21년전 일본인 유명 컬렉터로부터 인수했다는데 우리 동포가 소장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런 유물들이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을 것을 생각하면 조상들에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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