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 재판 1시간 내내 얼굴 묻고 꼼짝도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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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열린 수원지법 안산지원 401호 법정은 취재진과 일반 시민들로 꽉 찼다. 공판을 보러 온 박상용(45·안산시 와동)씨는 “현장검증 할 때마다 왜 마스크를 씌웠는지 모르겠다. 직접 얼굴을 보기 위해 법원에 나왔다”고 말했다.

공판 시작 시간인 오후 2시 검찰 측과 재판부가 차례로 입장했다. 잠시 뒤 강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녹색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차고 있었다. 앞서 그는 안산지청 구치감 입구에서 취재진을 보자 고개를 숙이고 수갑 찬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건장한 교도 경비대원 2명이 그를 피고인석으로 이끌었다. 강은 피고인석에 앉은 후 고개를 숙였지만 초췌하거나 힘든 표정은 아니었다.

강은 호남형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다. 눈에 살기가 맴돈 유영철 등 다른 연쇄살인범과 확연히 달랐다.

강호순이 6일 첫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진술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익이 되는 것에만 진술할 권리도 있습니다. 이해하셨죠”라고 재판장이 말했다. 그러자 강은 짧게 “예”라고 답했다. 주민등록번호와 사는 곳, 본적 등을 묻는 질문에도 간단하게 답했다. 강호순은 자리에 앉아 긴 턱을 가슴에 파묻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공판이 진행된 1시간 동안 이 자세를 유지했다.

공판 첫 순서로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었다. 부녀자 살해 7건, 장모와 네 번째 처 방화 치사 혐의까지 공소사실을 읽으며 검사는 연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혐의 사실을 다 읽고 앉을 때까지 20분이 걸렸다. 검찰은 “피고인 강호순은 처와 장모를 살해하고 4억80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뒤 심리적 고통을 모면하려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강의 국선 변호를 맡은 김기일 변호사는 7건의 살해 혐의는 인정했다. 그러나 방화치사 혐의에 대해선 “구체적인 범행 수법과 수단, 착화 원인 등이 특정되지 않아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방화치사 혐의 등에서 제시한 강호순의 성격·과시욕 등은 구성요건과 직접 관련이 없어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곧바로 이를 반박했다. “방화치사는 판례로 볼 때 간접 사실을 근거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강호순의 진술이나 변명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어 평소 성격과 성향을 불가피하게 적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2차 공판을 오는 11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기로 했다. 다음은 공판 후 김기일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강호순과 몇 번 만났나.

“한 차례다. 검사실에서 15분 정도 본 게 전부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공소 사실에 대해 인정하는지만 간단히 얘기했다.”

-방화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나.

“강하게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머뭇거리기만 했다. 구체적으로 더 묻진 않았다.”

-강이 따로 부탁하거나 범죄 이외의 이야기를 했나.

“없다.”

안산=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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