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괴된 박나리양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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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켜 온 朴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사건의 범인이 범행 13일만에 검거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리양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범인은 놀랍게도 임신 8개월의 20대 주부였다.

범행동기는 1천만원이 넘는 신용카드 연체와 사채에 쪼들려 온 경제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새 생명을 잉태한 몸으로 애지중지 키워온 남의 아이를 단지 돈때문에 유괴해 생명을 앗았으니 놀랍다 못해 몸서리가 쳐진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인면수심 (人面獸心) 의 전형 (典型) 과 황금만능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비록 나리양이 숨지기는 했으나 이번 사건이 유괴사건으로는 드물게 일찌감치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경찰 수사의 개가라고 하겠다.

목졸려 숨진 것이나 시체가 부패된 정도등으로 미뤄 나리양은 유괴후 일찌감치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즉각 공개수사를 결정한 부모의 판단과 경찰의 끈질긴 수사가 조기해결을 가능하게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찰의 초동 (初動) 수사가 보다 치밀하고 신중했었으면 하는 점이다.

범인이 서울 명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나리양의 집으로 전화를 할 때 경찰은 발신지를 추적해 검문하고도 옷차림이 다르고 임신부라는 이유로 풀어주었던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하겠다.

이제 남은 것은 공범들을 모두 검거해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일이다.

검거된 범인은 유괴현장에 남자3명과 여자 1명이 함께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어 4~5명의 공범이 도피중인 것으로 판단된다.

조속히 이들을 붙잡아 인명을 볼모로 돈을 노리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처벌하는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반사회적 범죄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과 공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 유괴사건은 그 속성상 피해자가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재확인됐다.

따라서 유괴는 예방 노력이 중요하다.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정과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린 생명의 대가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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