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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 퇴로 막힌 구로동 먹자골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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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굳게 닫힌 가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텅 빈 식당을 지키고 있는 김영숙(48·여)씨의 얼굴이 밤이 깊어갈수록 점차 굳어졌다. 지난달 17일 오후 10시30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초입에 위치한 먹자골목은 어두웠다. 골목 안에 늘어선 식당이나 선술집 등은 서너 집에 한 집 꼴로 불이 꺼져 있다. 문을 연 식당이나 술집들도 텅 빈 곳이 많았고 한두 테이블이나마 손님을 받은 곳은 드물었다.

서울 남구로역 인근 먹자골목의 한 식당 주인이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손님이 줄자 지난달부터 기름 난로를 연탄난로로 바꿨다. 이 골목은 서너 집에 한 집꼴로 문을 닫았다. [김상선 기자]


김씨는 이 동네에서 남편과 함께 3년째 찌개와 소주 등을 파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된다”며 “요즘 같아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이맘때 손님이 가장 붐볐는데 요즘엔 초저녁에 한두 테이블 받는 게 전부”라며 “혹시나 해서 새벽 2시까지 가게를 열지만 한두 테이블 더 받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문 닫은 한 식당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김상선 기자]

구로동 먹자골목의 식당들은 지난해만 하더라도 구로디지털단지에 입주해 있는 벤처기업 직원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곳이다. 또 주변에 마리오나 더블유몰, 패션아일랜드 같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어 쇼핑객들이 붐볐다. 성수동에서 10여 년간 식당을 하던 김씨가 이곳에서 새로 문을 연 것도 이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연말부터 불어닥친 경기 한파로 구로동 먹자골목은 문 닫는 식당이 줄을 잇고 있다.

구로동 먹자골목에서 4년째 삼겹살 집을 하던 이정림(52·여)씨는 연초에 아예 가게를 내놨다. 이씨는 “월세가 3개월치나 밀렸다”며 “권리금 2000만원을 포기하고 내놨는데도 아직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가게 문을 열고 있는 사람들도 맘이 편치 않다. 먹자골목에서 10여 년째 냉면집을 하며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김한수(45)씨는 “매달 돈 100(만원)씩은 손해 보는 것 같다”며 “맘 같아서는 벌써 그만뒀는데 딱히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먹자골목의 중간쯤에 위치한 고깃집 ‘돈이랑’에서 친구 둘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한선교(51)씨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데 두 달째 공치다 보니 안주 시킬 돈이 없다”며 “소주만 시켜 마시다 보니 주인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한씨의 테이블에는 불판은 꺼져 있었고 깍두기를 안주 삼아 소주병만 쌓여 가고 있었다.

◆문제점과 대책=자영업자는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운영자금이나 시설자금 1000만~5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소상공인지원 정책자금 5000억원은 밀려드는 자영업자 때문에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1월 23일 동나 신청접수가 중단된 상태다.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자영업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제활동인구 약 1280만 명 중 40%가 넘는 522만 명이 자영업 종사자다(2009년 1월 기준). 한국은 국민 1인당 식당이나 세탁소·목욕탕 등 자영업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하지만 자영업 대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주무 부처가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박사는 “자영업자 지원책을 주관하는 부서가 중기청이다 보니 중앙부처를 움직여 대책을 내놓기가 어렵다”며 “노동부나 지식경제부 등에서 자영업자 문제를 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새로운 길을 찾도록 지원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중앙대 이병훈(사회학)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영세 자영업자가 급증했는데 이들을 임금 근로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박사는 “경영 애로를 상담하는 경영도우미제나 맞춤형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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