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 총체적 위기…적조·벼멸구·기아사태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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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최근 호남지역의 사정은 총체적 위기라는 말이 어울릴 것같다.

남해 바다는 적조로 '바다 목장' 에 비상이 걸렸고, 광주.전남의 젖줄인 주암호는 녹조와 오염으로 '위험 수위' 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곡창 호남의 황금 들판은 벼멸구가 극성을 부려 대풍년을 위협하고 있다.

연이은 건설업의 부도 여파가 회복되기도 전에 기아사태가 터지고 아시아자동차와 협력업체의 위기는 지역경제의 기반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고 있다.

외지 대형유통업체의 진출은 영세상권마저 씨를 말릴 지경이고 지방대학들은 예년보다 더 지독한 취업난으로 캠퍼스가 우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지역의 미래를 열어 갈 다른 대책이 준비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평동.대불공단등 주요 공단은 잡초만 무성하고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었던 첨단과학단지내의 연구소 부지는 단 한군데의 연구소도 유치되지 못한채 주거지로의 용도변경을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무엇보다도 사회 구성원들이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모든 일을 풀어가는데 전제되어야 할 최우선의 목표는 지역발전의 미래를 위해 각계의 의지와 힘을 모으는 사회통합이다.

민선자치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광주.전남 통합논의나 광주.전남발전연구원 원장 선임문제 하나 합리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고, 우리들의 소중한 미래의 세대이기도 한 남총련사태도 함께 나서서 풀어 보려는 고민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희망의 불씨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양담배 추방운동이나 지역경제 살리기와 아시아자동차 협력업체 살리기 운동을 비롯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몸짓은 불씨를 등불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제 보다 책임있는 주체를 포함한 모두가 관성화된 생리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꾀할 때이다.

정치인.지방자치단체.기업.학계.시민사회단체는 물론이고 학생들까지도 지역경영의 책임있는 주체로서 위기극복과 미래에 대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가을이 되어도 수확할 것이 없으면 봄에 다시 씨 뿌릴 수 있도록 땅을 갈아 뒤엎고 거름을 줘야 한다.

수확할 것이 없다고 마냥 땅을 등질수야 있겠는가.

'결실의 계절' 가을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윤장현 <광주시민연대모임 공동대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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