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어떻게 시키세요? ② 탤런트 이정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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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딸과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아들을 보면서 항상 숨통을 틔워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입을 열었다. 다섯 살 때 서울대 교수를 사사하기 시작한 뒤로 군말 없이 꾸준히 한길을 걸어 온 딸. 그는 딸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아이에게 훈련을 강조했던 아내와 달리 이씨는 “연습하다 안 풀리면 무조건 쉬라”고 했다. 지나치게 피곤하면 감성과 악성을 인위적으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예술 분야에는 끊임없는 노력과 근성이 필요하잖아요. 지금도 악기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워요. 그 뒤에 있을 부모들의 열정이 그려지기도 하고요. 부모도 똑같이 공부해 가며 뒷바라지해야 하더군요. 애들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죠.”

그는 “배우는 인생을 조립하는 직업”이라며 말을 이었다. 배우가 극 중 인물의 삶을 조심스레 완성해 가듯 아이들도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해 가길 바랐다는 얘기다. 딸이 중간에 “그만두겠다”고 하면 바이올린을 더 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는 “되도록 아이들이 적성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말했다. 다만 아이들이 영어만큼은 일찍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단다. 영어를 잘하는 지인을 통해 어렸을 적부터 회화 연습을 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던 것. 그의 ‘선견지명’은 이후 두 자녀가 학교 공부를 할 때나 유학을 떠났을 때 큰 도움이 됐다.

딸 고교 때 유학 보내며 가슴앓이

딸의 유학은 이씨에게 가장 가슴에 남는 기억이기도 하다. 고2 때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갑작스레 유학을 가게 된 딸은 진학할 학교가 결정된 후 겨우 보름 만에 출국해야 했다. 연고도 없고 의논 상대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딸에게 이씨는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잘 몰랐다. 생각 끝에 그가 한 말은 “교회를 다녀라”였다. 딸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의지할 수 있었으면 했던 것이다. 허망하게 딸을 보내놓고 한 달 정도는 많이 힘들었다는 이씨. “13년 동안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도 없는 곳에서 지낸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린다”고 말했다. 요즘은 한국에서 대학 강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부러 1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나선다.

딸에 대한 자랑과 사랑이 이처럼 넘치는 그에게 물었다. 아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이씨는 “입시에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면서도 많이 애태웠다”고 털어놨다. “어떤 날은 아이가 방에 불을 꺼놓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부모 마음에는 백 가지, 천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되죠. 그런데 도와줄 방법이 없더라고요.” 한번은 아들이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내신 관리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이 옳았다는 이씨는 “인생에 크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쨌거나 석사, 박사 과정까지 할 건 다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태중의 아이에게도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태교를 하는데, 하물며 자라는 아이들이 스트레스가 없겠어요? 가능하면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신경 쓰려고 합니다.”

아버지 끼 물려받은 아들은 음악도 ‘박사’

엄한 아버지일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그는 아이들과 친구처럼 서슴없이 지냈다. 최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려 노력했다. “아버지가 친구처럼 대한다고 해서 애들이 버릇없어지는 건 아니더군요. 우리 아들도 엄청 예의가 발라요. 저 멀리 학교 선생님이 가시는 모습만 봐도 길을 건너가서 인사하고 돌아오는 애였어요.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서인지 음악도 좋아해 ‘스팅’에 관해서라면 백과사전이 따로 없다”며 아들 자랑도 한바탕 늘어놓는다. “때가 됐는데도 아들·딸이 짝을 안 데려와 나라도 적극 홍보하고 다니기로 했어요.”(웃음)

이씨는 항상 ‘긍정적으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을 강조한다. “단기간의 학습법보다는 그걸 소화해낼 수 있는 본인들의 의지와 집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나서 생기는 여유 시간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보내게끔 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부모는 아이들이 가진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며 겪는 고통을 조금 덜어주는 게 부모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글=최은혜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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