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에이즈보다 수퍼박테리아 감염 사망자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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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척추가 좁아져 기구 삽입 수술을 받은 A씨(72). 수술 1주일 후 열과 통증이 나자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메티실린이라는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황색포도상구균(MRSA)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의사는 즉시 반코마이신이라는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열이 떨어지지 않고 환자 상태가 점점 악화됐다. 병원 측은 이런 저런 처치를 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A씨는 2주 뒤 사망했다. A씨는 기구 삽입 과정에서 MRSA에 감염됐다.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9만4000여 명이 MRSA에 감염됐고 이 중 1만9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에이즈 사망자(1만7200명)보다 많다. 최근에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사진)이 코 성형 수술을 하다가 MRSA에 감염됐다.

우리나라에도 MRSA에 감염돼 숨지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통계가 없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2007년까지 4년간 238명이 감염돼 이 중 20~30%가 사망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2005~2007년 53명의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MRSA에 감염됐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6년 국내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44곳에서 발견된 황색포도상구균의 73.5%가 MRSA였다. 한양대 의대 감염내과 배현주 교수는 “국내 황색포도상구균 중 70~80%가 메티실린에 내성을 보이며 이 비율은 미국도 약 60%, 일본 70%에 달할 정도로 높다”고 설명한다.

MRSA 감염자에게 반코마이신 등의 강력한 항생제를 쓰다가 내성이 생기면 이 세균은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VRSA)과 같은 수퍼박테리아가 된다. 모든 항생제에 듣지 않는다. 이번에 배상 판결을 받은 민씨에 대해 재판부는 수퍼박테리아 유사 단계까지 간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케이스를 감정한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세균을 수퍼박테리아의 일종으로 봤다. 완전한 내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중간 정도의 내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VISA로 부른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발생한다. 아직 VRSA는 보고된 적이 없다. 세계적으로 6~8건 정도에 불과하다.


수퍼박테리아 감염을 막으려면 우선적으로 MRSA 감염을 막아야 한다. 주로 척추·관절·눈·뇌·심장 등 신체의 무균 부위를 수술하거나 요로·정맥·호흡기 등을 치료하기 위해 인체에 관을 삽입할 때 발생한다. 환자의 몸이나 의료진의 코·손 등에 묻은 균이 옮긴다. MRSA 감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병원들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MRSA 관리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대형병원들이 전문팀을 만들어 주요 처지 단계별 감염 예방 작업을 벌이고 있다. 병실 입구에 소독용 알코올을 비치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감염관리에는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는다.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 김준명(연세대 의대 교수) 회장은 “ 매년 수억원에 달하는 감염 예방 관련 인건비와 소모품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진료비용(수가)으로 인정해 주면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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