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넥스트 한 우물 파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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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5년전 결성된 이래, 록그룹 넥스트는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를 아우른 우리 시대 대표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음반마다 확고한 자기철학을 전파하는 실험정신과 '최소한 30만장' 을 보장하는 상업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리더 신해철 (29) 의 카리스마. 이는 '자유콘서트' 나 '라이브에이드' 등 대중음악인들의 대외적 발언.행동때마다 넥스트가 그 대변인으로 리스트 첫머리에 오르는 결정적 요소다.

언더와 오버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해온 넥스트가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달포만에 10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콘서트앨범 '아 유 레디' 가 그것이다.

모두 18곡이 들어간 이 음반은 펑키한 타이틀곡 '아 유 레디' 가 편곡.연주면에서 돋보이지만 전체적으론 고도의 복잡성과 정교함을 추구했던 기존 음반과 달리 기교를 배제하고 심플한 자기고백으로 꾸며간 점이 두드러진다.

'첫번째 팬서비스' 라고 붙인 부제는 음반의 촛점이 일반대중이나 록의 대의보다는 자신들의 팬을 배려하는 쪽에 기울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언더의 대변인이라는 보편주의에서 그냥 자기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만을 위한 개별주의로 전환하는 신호인가.

지난주초 본사커피숍에서 만나본 선글라스 차림의 신해철은 차분했지만 조금 지친 표정이었다.

드라큘라란 별명이 붙을만큼 체질이 돼버린 밤샘작업과 불면증으로 인한 피로탓만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인터뷰 초입에서 그는 서슴없이 "이제는 정말 힘에 부친다.

1, 2년내로 듬직한 동지들이 나오지 않는한 모든 부담을 벗고 그냥 넥스트만의 음악만 하고싶다" 고 잘라 말했다.

1년전만해도 언더와 오버를 잇는 고독한 중간자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하던 그에게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면 기대를 걸었던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인과 청중에 다함께 실망을 느꼈으며 일개그룹이 언더의 대표자와 대중밴드를 겸해야하는 현실에도 한계를 느꼈다는 진술이다.

"언더정신이 살아있는 음악을 만드는 한편 록계 스타로서 흥행성있는 곡도 내야한다는 이중의 강요에 시달려왔지만 한 그룹으론 무리한 일입니다.

부담을 나눌 마땅한 동지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론 그냥 우리 (넥스트)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펼쳐 보고 싶어요" 그는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인들이 "자기만의 음악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소신이 없다" 고 맹공하면서 청중에 대해서도 강도높은 비판을 펼쳤다.

"우리 언더의 청중이 오버에 갖는 남다른 적개심이 저는 싫어요. 진정한 언더의 대중은 오버에 무관심해야 할텐 데 적개심을 품는다는 건 실은 그 대상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죠. " 그는 오버에서도 댄스뮤직의 전횡에 매우 비관적 견해를 갖고있다.

업타운의 음악성, 디제이덕의 솔직한 상업성은 마음에 들지만 댄스뮤직 상당수는 대중의 정서중 저급한 부분에만 호소해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버/언더를 대립구조 아닌 순환과 상생의 관계로 본다는 점에서 대책없는 양비론이 아니라 유연하고 시점 넓은 음악관을 보여줬다.

언더가 개성껏 자기음악을 하고 오버가 적절하게 이를 수용하는 체제를 꿈꾸는 그는 이제 제작자의 입장에서 장래성있는 록그룹을 발굴해 오버에의 교두보를 확보할 계획이다.

그 첫번째 작업으로 한국 슬래시메탈의 대표적그룹 크래시의 프로듀서를 맡을 생각. 이를 위해 DJ등 방송출연도 가급적 줄일 계획이다.

"프로듀서를 맡게된다면 그들이 자기 음악을 마음껏 펼치도록 돕는데 노력을 극대화할 겁니다.

결국 음악은 자기 생각이죠. 자기 것을 주장하는 뮤지션은 세월이 흘러도 살아남는다고 확신해요. " 언더.오버의 힘겨운 중재자 대신 하고 싶은 음악에 충실하면서 록의 정신을 살려나가는 자원봉사자의 하나로 남으려는 그의 바람은 인재 한둘에 목을 메온 우리 대중음악계의 척박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글 = 강찬호 기자 사진 = 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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