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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노선 갈등 '폭풍 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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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동안 잠잠했던 민주노동당에 노선 갈등의 기류가 감돌고 있다.

'연합파(NL계)'가 당 최고위원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17일 정책위의장에 '범좌파(PD계)'의 주대환(50) 마산갑 지구당 위원장이 선출됐기 때문이다. 주 의장은 결선투표(12~16일) 결과 총 투표수 1만4274표 중 7342표(51.4%)를 얻어 연합파 측 이용대(6557표)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투표율 부진으로 자칫 무산 우려까지 낳았던 이번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54.3%였다. 이로써 민노당은 최고위원 13명에 대한 선출을 모두 끝내고 새 지도부 구성을 마무리했다.

정책정당을 표방하는 민노당에서 정책위의장은 다른 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중 있게 여겨지고 있다. 정책 개발은 물론 이를 통해 당의 색깔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장은 정책 개발 실무를 책임지는 정책연구소장과 의정지원단장을 임명토록 돼 있다. 자연 주 의장과 이념 노선을 같이하는 범좌파 쪽 인사들이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정책 개발은 범좌파가, 정책 채택 및 입법화는 연합파가 주도하는 복잡한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연합파가 민족문제를 강조하는 반면 사회주의 이론에 충실하려는 범좌파는 계급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뚜렷한 노선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불협화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특히 주 의장은 지난달 경선 공개토론에서 연합파의 대북관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남한 체제는 가혹하게 비판하는 민노당이 왜 북한 체제에는 관대하다고 보느냐"며 연합파 측 이용대 후보를 매섭게 추궁한 것이다. 당황한 이 후보는 "색깔 공세를 펼 줄 몰랐다"고 즉각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약자인 북한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설이나 냉전논리로 공격하면 곤란하다"고 받아넘기며 정면대결을 일단 피했다.

이를 계기로 두 그룹 간의 노선 싸움, 특히 북한 문제를 놓고 격렬한 당내 논쟁이 폭발했다. 당원 게시판에는 서로 비난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백개씩 올랐다. "이러다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주 의장 등장을 계기로 심각한 노선 갈등을 전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 의장은 이 같은 시각을 일축했다. 그는 "선거 때는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를 위해 여러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통일과 민족 문제에 대해 연합파와 (당내 갈등을) 걱정할 만큼 다른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마산고와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온 주 의장은 1992년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장을, 16대 총선에선 권영길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았었다.

◇NL.PD란=NL.PD는 1980년대 초 나타난 운동권 내 양대 노선. NL은 '민족해방론(National Liberation)'에 기초, 남한을 미국 식민지로 규정하고 반미투쟁과 연방제 통일을 강조했다. 주사파도 이 계열이다. 반면 PD는 '민중민주주의 혁명론(People's Democracy Revolution)'에 따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노.학연대를 중시했다. 또 북한의 주체사상이 아닌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종했다.

남정호.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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