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외국 벤처캐피털사 국내 첫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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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외국기업이 국내 벤처캐피털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그레일 코퍼레이션이 지난달 서울역삼동에 지점 (지점장 아서 카르마치.35) 을 개설하고 본격 영업에 들어갔다.

그레일사는 그동안 동유럽.중국등 신흥시장을 주무대로 활동해오다 이번에 외국 벤처캐피털 회사로선 처음으로 한국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카르마치는 "구조조정기의 한국에는 창업하는 회사가 많아 벤처캐피털 사업이 유망하다고 판단해 뛰어들게 됐다" 고 말했다.

그레일 코퍼레이션은 벌써 첫 작품을 하나 만들어냈다.

초절전 광고판 기술의 독점수입권을 호주에서 따낸 설립 2년째인 신생회사 L사에 홍콩 금융시장을 통해 9월 중순 20억원을 지원해 주기로 계약한 것. 제품의 사업성을 높이 평가해 무담보로 자금을 대주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그레일사의 투자기법은 좀 특이하다.

일단 투자금의 6% (약 1억2천만원) 를 수수료로 떼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연 13.8%의 이자를 분기별로 거둬들인다.

외국자금의 조달비용이 연7% 가량이므로 꽤 짭짤한 이자수입을 올릴 수 있다.

결국 그레일사는 국내외의 금리차를 이용한 자금중개방식으로 벤처지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원금 회수는 '싱킹펀드 (Sinking fund) 방식' 으로 투자대상 회사가 매년 원금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순이익의 일부를 적립토록 한 뒤 10년째 일시 상환토록 하고 있다.

특히 어느 정도 사업기반을 갖춰야만 지원하는 국내 벤처캐피털 회사와는 달리 그레일은 맨주먹 뿐인 신생기업이라도 사업성만 있으면 무담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레일사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규모는 50만 (4천5백만원)~2억달러 (1천8백억원) 선이라고 카르마치는 밝혔다.

자금은 미국및 유럽.홍콩등지의 5백여 금융기관에서 조달된다.

자금지원 외에 시장조사.사업전망등에 관해 경영컨설팅 서비스를 하며 신생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될 수 있을 만큼 커나가도록 '조련' 하는 것도 그레일사의 영업비법이다.

다만 벤처사업의 위험성을 감안해 컨설팅 수수료조로 관련서류 제작비 3백만~5백만원과 지원액의 6~10%를 징수하고 있다.

이 회사 서울지점 전화번호는 02 - 554 - 1803.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 개방폭이 앞으로 더욱 확대되는데다 첨단 투자기법과 저리의 자금조달을 무기로 앞세운 외국의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그레일사의 진출을 계기로 국내시장 공략에 나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증권업협회 이상훈 국제부장은 "외국 벤처캐피털은 일시에 빠져나가는 핫머니가 아니라 장기 투자자금이므로 우리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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