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개봉 영화 '접속' 깔끔한 화면처리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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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심야에 라디오방송을 들으며 무작정 컴퓨터통신에 접속한 적이 있는가.

혹시 맘이 통하는 대화상대자를 만날 수있을까 하는 기대에 대화방을 이리저리 기웃거리거나 펜팔란을 뒤적인 적이 있는가.

컴퓨터는 현대인의 개인주의와 고립, 대화의 단절을 상징하는 폐쇄적인 매체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익명' 이 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으로 인해 개방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

컴퓨터통신을 매개로 한 이성간의 만남과 심지어는 인터넷을 통해 결혼에 골인하는 인터넷커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컴퓨터통신을 통한 외로운 남녀간의 만남을 그린 장윤현감독의 데뷔작 '접속' (9월13일 개봉) 은 소재상으로는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 현대를 살아가는 외로운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스며들 듯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구성과 연출력에 있어 새롭고 신선한 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많은 한국영화들이 극적인 재미를 노려 과장을 하거나 아니면 대사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관습에 젖어있는 상황에서 '접속' 은 영상과 대사, 시각과 청각을 과장없이 조화시킨 깔끔함과 잔잔한 감동이 돋보인다.

'접속' 의 주인공 남녀는 말못할 가슴앓이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이다.

라디오 심야음악프로 PD인 동현 (한석규) 은 옛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며 케이블TV의 쇼핑가이드인 수현 (전도연) 은 짝사랑으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동현은 어느날 옛애인으로부터 배달된 희귀음반을 받아 추억의 노래를 자기프로에 틀게 되고, 이 음악을 들은 수현은 PC통신을 통해 그 음악을 다시 신청한다.

옛 애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동현은 수현의 ID를 불러내 대화를 시도하는게 얼굴모르는 만남의 첫시작이다.

장윤현 감독은 푸른 모니터 위에 글자가 흐르는 컴퓨터통신 장면을 최소로 줄이는 대신 화면 위로 잔잔한 내레이션을 흘림으로써 지나치게 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피해갔다.

간단하지만 외로운 사람의 내면심리를 잘 집어내는 탄력있는 대사와 유머감각도 재미를 보탠다.

드라마틱한 전개와 스피디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너무 밋밋하다는 느낌을 줄 수있지만 '접속' 은 새롭게 대하는 잔잔한 현대적 멜로드라마다.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 출신인 장윤현감독은 깔끔한 연출로 상업영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듯하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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