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령자 창업 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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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기업을 설립하는데 '나이' 가 장애가 될 수는 없다.

기업 창업 자금을 주로 지원하는 일본의 국민금융공고 (公庫)가 지난해 일본에서 창업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창업자의 52%가 40대 이상이었다.

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16.7%, 60세 이상도 3.4%나 됐다.

더구나 이들 고령자들이 설립한 기업중에는 첨단기술을 바탕으로한 벤처기업이 많아 놀라움을 더해준다.

일본의 닛케이 (日經) 비즈니스 최근호 (8월25일자)가 소개한 사례를 보자. 고베 (神戶) 시에 소재한 '카펙스' 의 에노모토 카즈오 (가本一男) 회장이 회사를 차린것은 지난 94년. 젊었을 때 사업을 해 모은 돈으로 소일하던 그가 새사업에뛰어든 것은 남들같으면 손자들의 재롱이나 볼 67세때. 창업 3년이 된 지난 3월말이 회사는 4억5천만엔의 매출액을 올리며 사무실용 커피메이커 생산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창업에 따른 시련은 적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간편하게 사용할수 있는 획기적인 커피메이커를 개발해 상품화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에노모토회장은 95년1월 발생한 고베 대지진으로 제품 설계도와 실험 데이터,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확보해놓은 고객 명단등 창업기반을 한순간에 땅속에 묻어버렸다.

그동안 들어간 돈만도 3억엔이나 됐다.

그러나 그는 이 시련에 굴하지 않고 구상해놓은 커피메이커를 제품화하는데 성공했고, '카펙스 10' 으로 명명된 커피메이커 (1대당 8만4천엔) 를 2년반만에 2만3천대나 팔아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카펙스사는 오는 10월을 목표로 가정용 커피메이커를 새로 선보이고,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함으로써 내년 3월말까지는 매출액을 22억엔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수 촬영에 필요한 비디오.스틸 복합카메라를 생산하는 '마린 옵티컬 시스템' 사의 나카지마 후사노리 (中嶋房德) 사장도 지난 95년 67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첨단 기술이 집약된 벤처기업을 일궈낸 경우다.

대학에서 광학을 전공한 나카지마 사장은 후지필름에서 기술자로 근무했고 해양 카메라맨으로도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비디오 촬영과 순간적인 스냅 사진 촬영이 가능한 특수 비디오.카메라를 개발했고, 이를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펜터 캠' 이란 이름을 가진 이 특수 카메라의 소매가격은 1백90만엔으로 지금까지 관공서및 병원등에 약 1백50대가 팔려나갔다.

컴퓨터 주변기기의 개발및 설계를 지원하는 '텍스' 사의 테루누마 카즈히코 (照沼一彦) 사장은 지난 90년 46세의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나와 창업한 경우다.

소니사에서 영상처리 장치의 개발을 지원하는 부서에서 유능한 기술자로 평가받던 테루누마 사장은 그동안 자신이 배운 기술로 기술력이 부족한 작은 회사들을 돕겠다는 신념을 갖고 동료 직원 두명과 함께 소니사를 나왔다.

창업 7년째인 텍스사의 연간 매출액은 아직 1억1천만엔에 그치고, 테루누마 사장의 수입은 소니사를 다닐 때만 못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다.

컴퓨터 관련 기술의 개발을 애타게 원하는 기업의 요청을 받을 때마다 자신이 새로운 기술의 개척자가 된다는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 고령자들의 창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배경으로는 우선 전후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이른바 '단카이 (團塊) 세대' (주로 47~49년에 출생)가 지난 90년전후 일본 기업들의 사업재구축 (리스트럭처링) 바람에 휘말리면서 대거 직장에서 밀려난 점을 들 수있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창업투자 회사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창업이 제도적으로 쉬워진만큼 기술력과 인맥 (人脈) 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령자의 창업이 상대적으로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벤처캐피털사에 따르면 이 회사가 지원하는 벤처기업 1백개사중 창업자가 50세이상인 경우는 무려 32개사에 달해 벤처기업에 있어서도 고령자의 창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김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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