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서울올림픽 문화유산화 기념관 건립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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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문화유산의 해인 올해들어 여러가지 뜻있는 행사들이 줄을 이어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는 5천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살리고 지키지 못해 외견상 초라한 빈곤감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빈곤감 이전의 수치감을 한번쯤 느꼈으리라. 남북분단과 6.25전란 이후 폐허에서 다시 일어선 우리 민족이 기적같은 경제부흥과 함께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서울올림픽이었다.

그러기에 서울올림픽이 남긴 상징성과 역사성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것이며, 그 자체가 엄청난 문화유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그 유산을 제대로 살리며 지켜가고 있는가.

우리에겐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두명의 영웅이 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위업을 기념할만한, 그 큰 뜻을 가슴에 새길만한 기념관 하나 없다.

두달전 미국 스포츠계를 돌아보는 기회에 새삼스레 놀랍고 부러웠던 점은 중요한 현장마다 그 인물과 기록을 새긴 기념관이나 명예전당을 만들어 역사적 가치를 더 높여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 올림픽을 개최한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은 당시의 시설물들을 문화유산으로 만드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로잔의 IOC본부에 인접한 올림픽박물관만 해도 유럽박물관 최우수상을 받을만큼 훌륭한 미관과 내용물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올림픽공원내 파크텔 안에 있는 기념실은 4백여평 규모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되고 있는 서울올림픽의 유산이라고 하기엔 부끄럽기만 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올림픽공원 안에 새로운 올림픽기념관을 세우려는 계획은 기본건립계획은 물론, 도시계획.문화재 심의.교통영향평가및 과밀부담금이라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모두 통과한 시점에서 지역행정기관의 제동으로 백지화될지도 모르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한다.

행정당국인 송파구청의 신청반려이유는 이렇다.

올림픽기념관이 전시.업무.체육의 복합시설물로서 순수성을 잃은데다 주변환경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인근 일부 아파트주민들은 경관훼손과 조망권침해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화 이후 대단위 국책사업도 주민의 눈치를 보기 바쁘고, 더구나 지자제 이후 행정마찰이 심해 되는 일이 없다는 푸념의 소리가 높은데 정말 올림픽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이 계획이 여기서 좌절된다면 훗날 어떤 지탄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올림픽공원은 어느 지역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이다.

이 공원은 도시계획법상 운동장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안의 모든 구조물이나 전시품은 세계인의 관심대상인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인 사업이 집단이기주의에 의해 좌우될 일은 결코 아니다.

하물며 경직된 행정당국의 권위주의나 편의주의가 문제가 된다면 이야말로 문화국민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태영 언론인.koc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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