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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방학 이대로 좋은가] 영국 사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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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영국에는 '공백연도 (gap year)' 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GCSE)에 합격한 학생이 2년간 공부, 대학입학시험 (A레벨 시험)에 합격하면 A레벨 성적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는데 진학 전에 1년동안 세상경험을 하는 특이한 제도다.

지난 14일 A레벨 성적 결과가 발표됐는데, 올해도 2만명 이상 학생이 공백연도에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백연도 기간동안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적성을 피부로 느끼며 미래를 설계하게 된다.

영국 런던 일포드에 사는 러셀 골드먼군은 앞으로 1년간 막스 앤드 스펜서백화점에서 일한 뒤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미국 맨체스터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멜리사 갤러거양은 1년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기 위해 여행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의 학부모라면 언뜻 '낭비' 처럼 느낄법한 공백연도는 아직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자유시간을 제공하고 스스로 설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학생의 자율능력을 중시하는 영국 풍토는 대학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대학도 다른 나라 대학처럼 이론보다 실제를 중시하고, 학생들도 졸업후 취업을 중시하는 경향이 우세해지고 있지만 대학의 기본방향은 여전히 논리와 독창성을 중시하고 있다.

암기식 공부에 젖어온 한국 유학생이 영국에서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바로 독창성을 요구하는 영국 대학의 수업방식이다.

특히 영국대학에서 학위논문을 쓸 때 독창성은 상당히 중요하다.

영국대학생들이 논리전개에 뛰어난 것은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이 반복되는 교육풍토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초등학생이 되면 일기를 쓰는 것은 물론 문학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단순한 독후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책속의 주인공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교육을 받는다.

시험도 모두 주관식이다.

16세에 치르는 GCSE시험도 10과목 모두 주관식이다.

자연히 어릴 때부터 자기 논리와 주관을 세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대학이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각 계열마다 현장실습을 의무화, 외국어 전공 학생은 외국경험을 해야하며 공학계열 학생은 일정기간동안 공장실습을 해야한다.

이런 차원에서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소 (SOAS) 의 몽고어 전공 학생들은 최근 몽고로 1년동안 현장실습 여행을 떠났다.

이같이 영국 대학생들은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때문에 방학도 매우 소중한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는다.

런던 = 정우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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