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이 부닥치는 외교협상의 막간엔 춤이 등장하곤 했다. 1814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이어졌던 빈 국제회의가 그랬다. 이 회의엔 유럽 세계를 주름잡았던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황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총리, 프랑스의 탈레랑 외무장관을 비롯해 영국과 프러시아의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이들의 목표는 나폴레옹의 혁명전쟁으로 붕괴한 유럽의 구체제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공동의 적이었던 나폴레옹은 격파했지만 구체제를 복원하는 영토 나눠먹기 협상에선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좀처럼 합의를 보지 못했다. 낮의 협상은 지지부진했으나 밤의 화려한 무도회만은 끊이지 않았다.
하는 일 없이 파티만 즐기는 것처럼 보였던 빈 회의를 두고 사람들은 '회의는 춤춘다'고 조롱했다. 그래도 1815년 이래 100여년간 유럽의 국제질서 틀을 잡은 빈 체제는 탄생했다. 역설적으로 춤무대에서 몸의 교류가 없었다면 그 지루하고 소모적인 협상은 깨졌을지 모른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최근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 "(부시 미국 대통령과) 목이 탈 정도로 춤추고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중매인처럼 이 뜻을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나 부시는 김정일과 둘이 추는 춤은 사양하겠다고 거절했다.
김정일이 체제를 보장받기 위해 부시와의 만남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실감나는 에피소드다. 그런데 부시는 냉담하기 짝이 없다. 김정일과 한번씩 춤을 췄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는 종류가 다른 파트너다. 춤 없는 협상은 배반당하고 깨지기 쉽다. 안타깝게도 부시에게 춤을 추게 할 힘은 한국에도 없다.
전영기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