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8월 - 그 역사의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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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8월은 늘 역사논쟁으로 시끄럽다.

'종전' 기념식을 치른 일본이나, '해방' 을 재음미하는 한국이나 다를바 없다.

수년전부터 거론돼 온 종군위안부 문제외에도 독도를 포함한 한.일 양국간의 신영해설정 문제가 불거져 당사자들의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북한체제위기에 대비한 안보상황점검과 북.일, 북.미간 수교교섭 움직임, 그리고 한.일간 무역적자 해소 방안등 끊임없이 논의. 개선해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8월의 '역사' 는 제반 (諸般) 문제에 대한 일단의 논의에 항상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해 왔다.

이 시기에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최근 매우 시사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독일 역사교과서 - 가해 (加害) 를 어떻게 다뤘나' 라는 제목으로 45분씩 3회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독일.폴란드, 독일.체코 사이의 역사.지리 교과서 공동연구절차를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 독일과 피해자 폴란드및 체코간에 논쟁이 돼왔던 역사적 쟁점에 대해 당사국 전문가들이 현장을 답사하고 문헌조사와 격렬한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했다.

관계국 최고 지도자들이 공식석상에서 솔직하게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또는 수용하는 장면들이 새삼 감동을 준다.

요즘 일본의 마이니치 (每日) 신문이 연재하고 있는 역사소설 '석별 (惜別) 의 바다' (작가 사와다 후지코) 는 임진왜란때 왜군이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조선 의병들의 목을 베어 일본까지 보내면 도중에 부패하기 때문에 대신 코와 귀를 소금에 절여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에게 보냈으며 그 숫자에 따라 포상이 결정됐다고 적고 있다.

일본이 대철학자로 받들고 있는 마루야마 마사오 (丸山眞男) 의 10세때 일기가 소개된 것도 바로 지난주다.

23년 관동대지진때 조선인이 이른바 자경단 (自警團)에 의해 다량 학살된 것을 가슴아파하면서 "자경단은 해체돼야 한다" 고 기록돼 있다.

지난 4월 도쿄 (東京) 를 방문한 로만 헤어초크 독일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맨 먼저 받은 질문은 "일본이 과거의 어두운 면을 교과서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애국심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과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였다.

대통령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범죄는 범죄라고 확실히 말해야 한다.

역사로부터 도피하지 말라.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94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 수상은 일본에 아시아역사 자료센터를 건립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 소관부처도 결정되지 않았다.

지난달에 발족한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될 것같다.

독일.폴란드간의 역사 공동연구 모델은 우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일본 정치.경제.사회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이 독일과 크게 다르고 저항도 만만치 않다.

역사문제를 풀어가는데는 한국이 주도적인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뼈저린 반성이 앞서야 한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역사연구와 사료 (史料) 확보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지 않고서는 일본을 설득할 수 없다.

한.일 관계사를 연구했던 학자들의 상당수가 다른 분야로 '변절.외도' 했으며 그 공백이 너무 크다.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치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일본 신문의 인용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본학자들과의 역사토론에서 논리적 설득을 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사료다툼에서 한국은 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을 뒷받침하는 사료확보조차 어려운 처지다.

스위스가 독일 나치스와 금괴 비밀거래를 했던 자료를 마지못해 공개한 것처럼 일본이 종군위안부자료를 내놓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늘 흥분하고 감정적이었으며, 그리고 8월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걸음을 했을 뿐이다.

역사논쟁은 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최철주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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