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감독 미개봉작 '거프만을 기다리며' 비디오로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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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고전을 희화화하면서 동시에 실제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오는 독특한 형식의 미개봉작 '거프만을 기다리며' (콜럼비아)가 비디오로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초 미국서 개봉돼 인터넷의 영화광들에게 높은 인기를 모은 이 작품은 제목에서 시사하다시피 사무엘 베케트의 유명한 고전 '고도를 기다리며' 를 연상시키고 실제 현실에 대입시킨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 미주리주의 작은 가상마을 블레인에서 이 고장 설립 1백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아마추어 연기자로 나서 마을의 역사를 회고하고 희망찬 미래를 모색하는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감독.각본.주연을 맡은 크리스토퍼 게스트는 영화를 통해 아마추어 작품이지만 연기자 캐스팅.반복되는 리허설.실제 공연등에서 일어나는 작품 제작의 열정과 어려운 점들을 코믹하지만 비유적으로 실현해 낸다.

뮤지컬을 상연하기 위해 각종 직업을 가진 연기자들이 연기에만 완전히 몰두하지만 어린이 학예회 수준의 연기밖에 못하는 모습이 우선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한심해 보이는 모습들 자체가 연기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시청자들은 약간 당황하게 된다.

마을 축제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행사에 참가하면서도 미친듯이 열중하고 있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재현해 내는 재주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고도를 기다리며' 에서 전달해 주는 메시지처럼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거프만' 이라는 희망의 존재를 막연히 기다리면서 인간의 해결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드러내준다.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듯이 일상생활을 해오다가 갑자기 예술가가 된 듯한 마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안달하는 연기자들에게서 허무주의도 발견하게 된다.

'거프만' 은 브로드웨이의 이름난 제작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가 도착하기만 하면 아무리 무의미하고 말도 안되는 연극무대라도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는 (거짓) 믿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대본도 없이 무책임하게 내뱉어지는 대사와 몸짓들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얼핏보기엔 짧은 시간 동안 아무렇게나 촬영한 듯하지만 빈틈없는 연출과 관객들을 완전히 속아넘어가게 하는 절묘한 연기로 감탄을 자아낸다.

미국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과 같은 장르가 우스꽝스럽고 다큐멘터리를 흉내낸다고 해서 '모큐멘터리' 라고 명명했다.

'나홀로 집에' 에서 덤벙대는 어머니 역으로 낯이 익은 캐서린 오하라가 연기에 몰두하는 여행업자로 나와 능란한 코믹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실제로 세익스피어의 고전 '햄릿' 을 영화화한 캐네스 브래너는 정작 영화 '햄릿' 을 선보이기 이전에 '햄릿 만들기' 란 영화를 통해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갖는 의미와 다양하게 직면하는 문제들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을 실행하기도 했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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